“‘라프텔’이라는 회사명은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ONEPIECE)’에 나오는 이상향(理想鄕)의 명칭이 맞나요?” 기자의 질문에 하얀색 모니터 위로 ‘맞습니다’라는 네 글자가 순식간에 적혔다. 손가락이 아닌 눈(안구)의 깜빡임 등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서였다.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해주는 정보기술(IT) 분야 중 장애보조 기기의 일종인 미국 아이테크 사의 ‘안구 마우스’ 사용이 이를 가능케 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애니메이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라프텔의 신형진(38) 공동 창업자 겸 프로덕트 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신씨의 모친 이원옥(75) 여사를 9월 13일 오후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에도 신씨의 눈은 쉼 없이 움직이며 영문 문서를 작성하는 등 주어진 회사 업무에 한창이었다. 2014년 설립된 라프텔은 2019년 8월 국내 전자책 1위 업체 리디(브랜드명은 리디북스)에 인수돼 여전히 리디 서비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신씨는 희귀병인 선천적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우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 병은 온몸의 근육이 평생에 걸쳐 천천히 마비되는 병이다. 장기 근육까지 말라붙으면서 온몸의 뼈가 휘어져 격렬하고 만성적인 통증이 수반되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이 여사에 따르면 신씨는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손은 움직일 수 있어 간단한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40대를 바라보는 현재는 눈과 입만 기능한다. 이날 신씨는 일시적인 폐렴으로 목에 튜브를 삽입한 탓에 말은 하지 못했다.
그는 모교인 연세대 후배들과 창업한 라프텔에서 매일 평균 13시간 이상씩 모니터 앞에 누워 눈으로 일하고 있다.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02학번인 신씨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초·중·고는 일사천리로 졸업 했지만, 2002년 대학 진학 후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2011년 9년만에 학부를 마쳤다.
입과 눈 이외의 다른 신체는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장애 학생들도 버거워하는 전공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으며 평균 3.5의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 과정을 마쳤다. 이후 석·박사 통합 과정 대학원에서 이 과정을 수료했다. 당시 연세대 안팎에서는 ‘연세대 스티븐 호킹’ ‘타고난 천재’ 등의 수식어가 그를 따랐다. 신씨와 그의 수발을 든 모친이 흘린 땀과 노력의 시간이 빚어낸 값진 결과였다. 신씨의 모친 이 여사도 연세대로부터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신씨는 석·박사 통합 과정을 수료한 후 동문 후배들과 라프텔을 공동 창업했다. 평소 만화와 컴퓨터를 좋아해 학업 연장보다 직장인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인터뷰는 이 여사와는 대면, 신씨와는 대면 후 서면으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강인한 인상의 이 여사는 “아들에게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는 할 수 없으니, 납세의 의무에 철저하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 직책과 업무는 무엇인가.
신형진 “수평적 조직 문화라서 직책은 따로 없다. 굳이 말하자면 라프텔 프로덕트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다. 데이터 관리와 분석 업무를 진행한다. 2020년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널리 보급되고 있는데, 나는 이미 수년째 재택과 화상으로 일하고 있다.”
이원옥 “아들이 어려서부터 추리물을 중심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적성과 전공에 딱 맞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일에 대한 의욕적인 생각과 자세가 육체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루 일과도 궁금하다.
신형진 “아침에 눈을 떠 신변 처리를 한 다음 컴퓨터 앞에 가서 안구 마우스에 눈동자 초점을 맞출 때까지 모친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후부터는 안구 마우스로 업무를 온전히 혼자서 할 수 있다. 미팅 시간 이외에는 근무시간이 딱히 정해진 건 없다. 정해진 업무를 완수하면 되는 방식이다. 다만 그만큼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원옥 “보통 아침 9시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 조용한 밤에 더 집중이 잘된다고 말하더라.”
‘눈’만으로 일하는 게 신기하다.
신형진 “안구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부착된 센서가 눈동자의 시선을 추적해서 바라보는 곳으로 마우스 커서가 이동한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1클릭, 약간 길게 깜빡이면 더블 클릭이 된다. 보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드래그 등의 동작도 가능하다. 화상 키보드를 사용해서 채팅은 물론 코딩 작업에도 무리가 없다.”
연세대 후배들과 창업한 계기는.
신형진 “대학원에 다닐 때 같은 연구실에서 수업도 함께 듣고 대필 도우미도 해주던 후배가 있었다. 그가 갑자기 대학원을 그만두고 창업하겠다고 말하더라. 마침 그와 내가 같은 만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고, 창업할 분야가 만화 관련된 거라 그 후배의 제안에 응했다.”
어머님은 창업 소식을 듣고 어떠셨나.
이원옥 “놀랐다(웃음). 2017년 아들이 갑자기 누나와 여동생 부부를 포함해 온 가족을 다 불렀다. 그 자리에서 라프텔 얘기를 꺼냈다. 박사 학위를 단념하고 일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한 것이다. 연세대 지도 교수와 상담 후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너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못 하니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라’고 끊임없이 얘기한다.”
희귀병인 만큼 약값도 비쌀 듯한데.
이원옥 “과거에는 약도 없었다. 그러다 수년 전 해외에서 약이 나왔다. 주사를 한 번 맞는 데 약 8600만원이 든다. 다행히 건강보험이 적용돼 현재는 1회 주사에 600만원 정도가 든다. 비슷한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우와 그의 부모들을 안다. 어떤 이들에게 600만원은 매우 큰돈이다. 이런 분들을 돕는 제도나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포부는.
신형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과 가족, 친구 등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이런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단지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는 꼭 거창한 위치에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옥 “아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항상 걱정했다. 소명 의식을 가지고 ‘좋은 엄마’ 노릇을 계속할 것이다. 더 나아가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모든 이들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이미 연세대 및 세브란스병원 등에 약 26억원을 기부했다. 능력이 되는 한 더 많은 이에게 은혜를 갚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