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2050년까지 항공사들의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 제로(Net Zero)’에 도달하기로 결의했다. 국내 항공업계는 친환경 여객기를 도입하거나 자체적인 연료 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넷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탄소 배출이 80%까지 적은 바이오 항공유 사용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아직 국내엔 법적 근거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실제 도입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운송협회(IATA)는 지난 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총회에서 탄소 배출 감축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윌리엄 월시 IATA 사무총장은 “항공업계에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세계 항공업계의 유엔으로 불리는 IATA는 전 세계 120개국 290여개 항공사가 참여하는 민간기구로 전 세계 항공 교통의 82%를 차지한다. 국내에는 대한항공(003490), 아시아나항공(020560), 티웨이항공(091810), 제주항공(089590), 진에어(272450) 등이 회원사로 있다.

지난 4일 인천국제공항 활주로 위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IATA의 이번 결정은 유럽연합(EU)이 제시한 배출 목표를 수용한 유럽 항공업계의 조치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항공기 운항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전 세계 전체 배출량의 2~3% 수준이다. IATA에 따르면 2050년까지 항공업계가 넷 제로를 실현하기 위해선 총 1.8Gt(기가톤)의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B777-200 여객기가 인천~일본 오사카 노선을 오갈 때 배출되는 탄소량이 30t 안팎으로 해당 노선을 6000만번 오갈 때 배출되는 양이다.

항공업계는 연료 효율이 높은 친환경 항공기 도입을 대안으로 꼽았다. 현재 대한항공이 10대를 보유하고 있는 B787-9 모델이 친환경 항공기로 꼽힌다. B787-9는 기체의 50%가 탄소복합소재로 제작됐다. 덕분에 동급 기종 대비 좌석당 연료효율이 약 20%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 적다. 대한항공은 최근 ESG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3200억원으로 연료 효율이 동급 기종보다 25% 높은 B787-10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A350, A321NEO 등 신형 여객기를 도입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자본잠식에 빠진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언감생심’이란 반응이다. LCC 관계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한 상황에서 친환경 여객기 도입은 꿈도 못 꾼다”라며 “재무구조 악화로 신용도까지 낮아 대한항공처럼 ESG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착륙 후 지상에서 이동할 때 엔진을 1개만 사용하거나, 최단 항로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연료 사용을 줄이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보잉의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친환경 여객기로 꼽히는 B787-9 ‘드림라이너’를 제작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항공업계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를 사용하는 게 탄소 배출 절감에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옥수수 등 식물에서 추출한 바이오 연료를 혼합해 만든 바이오 항공유가 대표적인 SAF다. 바이오 항공유는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어 친환경 여객기 도입보다 효과적인 탄소 배출 절감 대안으로 꼽힌다. IATA는 SAF를 사용하면 2050년까지 목표 감축량의 3분의 2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들이 바이오 항공유를 사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항공업계와 정유업계, 산업통상자원부가 바이오 항공유 도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협의 중이지만, 관련 용어들의 법적 정의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가격도 문제다. 바이오 항공유는 일반 항공유보다 2~3배가량 비싸기 때문에 항공사들이 자발적으로 사용하기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올해 2분기 대한항공이 3개월 동안 연료 유류비로 지출한 금액만 4000억원이 넘는다.

항공업계는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는 만큼, 항공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선 바이오 항공유 관련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제도적 기반을 조속히 마련한 뒤 보조금 등 지원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선 정유업계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이오 항공유 공급 단가를 낮춰 수요 확대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