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년 넘게 순환 휴직을 해온 제주항공(089590) 직원 A씨는 최근 사내 심리 상담 프로그램 ‘감성코칭’을 이용했다. 내·외부 전문 상담가가 오프라인과 온라인 소통 공간에서 임직원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년간 370여명의 임직원이 총 750여회의 상담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A씨는 “반복되는 휴직과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불안함에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전문 상담가와 상담을 받고 나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순환 휴직과 재택근무가 이어지면서 임직원의 마음 건강을 챙기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직원도 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장기간 재택근무로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말한다. 사내에 자체 심리 상담소를 운영하거나 공연 등 외부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주는 기업도 있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는 만큼 임직원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은 더 다양해질 전망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DL(000210)그룹(옛 대림그룹)은 최근 직원들의 심리 스트레스를 돌보기 위한 전문 상담 프로그램을 사내에 도입했다. 24시간 상담이 가능한 ‘긴급 상담 헬프 데스크’까지 만들었는데, 임직원은 언제든 직장 내 대인관계, 업무, 개인 생활 등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문제를 상담할 수 있다. 포스코(POSCO) 역시 올해 포항제철소의 심리 상담실 ‘마음챙김센터휴(休)’를 확장하고 본사 직원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임직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까지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업도 있다. 한화그룹의 방산·정보통신 자회사 한화시스템(272210)은 올해 하반기부터 임직원 본인뿐 아니라 직계 가족에게 심리 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내 무료 심리 상담 횟수를 재직 기간 중 8회에서 연간 6회로 늘렸다. 4인 가족이 총 24번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덕분에 사내 심리 상담 횟수는 2019년 월평균 9.7회에서 올해 12회로 늘었다. 롯데건설도 올해 하반기부터 배우자와 자녀까지 상담 대상자의 폭을 넓혔다.
기업들이 임직원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이유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우울증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정신 건강 관련 산재 신청은 총 517건으로, 2016년(183건)에 비해 182%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코로나19 국민건강 실태조사’에서도 코로나 이후 우울 평균점수는 5.7점으로 2018년 ‘지역사회 건강조사’ 결과인 2.3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상담 외에 임직원의 정서 안정을 위한 이색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업도 있다. 올해 한화생명(088350)은 63빌딩 본사 사무실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서울이 아닌 강원도 양양의 호텔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근무할 수 있다.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총 16개의 부서 임직원이 이 제도를 활용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색다른 환경에서 활력을 얻자는 취지로 도입한 제도”라며 “앞으로 제주도나 정선에서도 근무할 수 있도록 근무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임직원 간 소통 기회를 늘리기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각각 다른 부서에 소속된 임직원 4명이 모여 공연 관람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언젠간 끝날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직원들이 마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066570), LG화학(051910) 등 LG그룹 계열사들은 원격 요가 수업, 가상 런치 타임, 온라인 요리 강습 등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통해 상호 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복지 프로그램 확대는 ESG 경영 기조에 발맞춘 기업 문화 개선의 일환”이라면서 “사내 상담 프로그램은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데, 직원들의 이탈을 줄여 채용 비용을 아끼고 생산성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