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하자마자 폐업”, “주주 돈은 왜 탐내”…

10일 오전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인천 동구 두산인프라코어 본사 정문 앞에는 이 같은 문구가 쓰인 10개의 근조화환이 배달됐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으로 편입된 두산인프라코어의 소액 주주들은 주총장에 들어가기 전 조화 앞에서 “동학개미 등골 휘는 몸체만 한 8000억 유상증자 즉각 철회”, “알짜기업 두인(두산인프라코어) 인수한 현대중공업은 개미한테 유상증자 빨대 꽂지 말고, 대국적으로 경영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날 조영철 현대제뉴인 대표이사(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주식 액면가를 5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추는 5대 1 무상감자, ‘현대두산인프라코어’로의 사명 변경 안건을 논의하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다. 소액 주주들은 무상감자 등에 반발했으나 3건의 안건은 주총 개회 후 약 1시간 30분 만에 모두 통과됐다.

10일 오전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인천 동구 두산인프라코어 본사 정문 앞에 근조화환이 배달돼 있다. 이날 소액 주주들은 계란을 던지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정민하 기자

◇ 한 시간 반 만에 안건 모두 통과… 일부 소액 주주 항의하며 나가기도

두산인프라코어 소액 주주들은 이날 임시 주총에서 논의된 무상감자를 유상증자의 전(前) 단계로 보고, 이에 반발하며 단체 행동에 돌입했다. 네이버(NAVER(035420)) 밴드 등 소셜미디어(SNS)에 소액 주주 모임을 만들고, 지난달 31일부터 전날인 9일까지 진행된 전자 투표에서 주주들의 반대표 행사를 독려하는 등 적극적으로 부결 운동을 진행했다. 이들은 이날 현장에서 그룹 건설기계 중간지주사인 현대제뉴인과 두산인프라코어 로고가 그려진 판에 날계란을 투척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날 임시 주총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주주 50여명이 참석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한 책상에 2~3명씩 준비된 자리가 모자라자 일부 주주들은 주총장 뒤쪽에 임시로 의자를 놓고 앉기도 했다. 이날 주총에 참여한 한 주주는 “최근 열렸던 주총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첫번째 안건인 조영철 현대제뉴인 대표이사의 두산인프라코어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시작 20여분 만에 통과됐다. 하지만 주식의 액면가를 5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추는 5대 1 무상감자를 결정하는 2호 안건에서 주주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일부 주주들은 “허수아비 사장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사장)은 주주들의 질문에 “건설기계 업계에서 디지털전환은 꼭 필요하다”며 “부채 비율을 낮춰 앞으로 주주들의 믿음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무상감자 안건은 약 한 시간만에 표결에 부쳐져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소액 주주들이 항의를 표시하며 주총장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무상감자에 따른 두산인프라코어 주식 매매 거래 정지 예정기간은 10월 8일부터 25일까지이며, 신주상장예정일은 10월 26일이다. 이날 통과된 무상감자 안건과는 별개로 유상증자의 경우 이후 이사회에서 결의될 예정이다.

10일 오전 인천 동구 두산인프라코어 임시 주총장에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 /정민하 기자

◇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사명 변경한 두산인프라코어… 손동연 사장 “주주가치 제고할 것”

이날 사내이사 선임, 무상감자 외에도 ‘현대두산인프라코어’로 사명을 변경하는 정관변경 안건이 의결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5년 사명이 확정된 이후 16년 만에 이름을 바꾸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현대와 두산(000150) 브랜드를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8월 19일자로 현대중공업 그룹으로 편입되었다”며 “향후 현대중공업 그룹 내의 여러 계열사들과 시너지가 기대되며, 이를 통해 회사가 성장하고 주주가치가 제고될 수 있도록 모든 임직원들이 지속적인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달 25일 현대제뉴인이 진행한 첫 통합 기업설명회(IR)에서 무상감자와 함께 연내 최대 8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다음 날인 26일 주가가 18.77% 하락하면서 소액 주주들의 반발이 커졌다. 현대제뉴인은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 중 3000억원은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지분 20% 인수에, 2000억원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법인세 납부, 3000억원은 디지털 전환 등 미래 기술 개발에 사용할 계획이다.

주주들의 반발과는 달리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용도는 높아졌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로 상향 조정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업체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도 보고서를 내고 “두산인프라코어의 이번 무상감자의 경우 주주가치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전혀 없다”며 임시 주총에서 다룰 총 3건의 안건에 대해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세계 각국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투자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지침을 제공하는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