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의 핵심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이 또다시 2달러대로 내려앉으며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는 이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경유와 등유(항공유)의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업계는 손익분기점 이상의 정제마진 회복세가 하반기 중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전망이 엇나갔다. 세계 석유 수요도 다시 위축되고 있어 정제마진 정상화는 연말 이후를 노려봐야 하는 상황이다.

5일 정유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전주 대비 0.1달러 오른 배럴당 2.9달러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 운영 등 비용을 제외한 것으로 정유사의 핵심 수익 지표다. 정제마진은 지난 7월 넷째주 3.0달러로 4월 다섯째주(3.2달러) 이후 12주 만에 3달러대로 올라섰지만, 3주 만인 지난달 셋째주에 다시 2.8달러로 내려왔다. 업계는 배럴당 4달러 이상을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올해 정제마진은 단 한번도 4달러대를 기록하지 못하고 1~3달러대 박스권에 갇혀있다.

연합뉴스

정제마진 회복세가 지지부진한 것은 휘발유를 제외한 경유와 등유의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경유의 배럴당 스프레드(제품과 두바이유의 가격차)는 지난달 넷째주 7.2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6.8달러) 대비 0.4달러 오른 수준이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배럴당 13달러)에 한참 못미친다. 이마저도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항공유로 쓰이는 등유 역시 국가간 제한적 이동으로 스프레드가 14주 연속 5달러 미만에 머물러 있다. 2019년 말 13~17달러대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유는 주로 트럭 등 상용차와 산업 장비에 쓰이는데, 경제가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다 보니 경유 수요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특히 동남아 내 수요가 많은 편인데, 최근 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아시아 마진이 특히 저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항공유 판매가 워낙 저조해 항공유를 경유로 전환해 생산하는 추세”라며 “이 때문에 공급량이 늘어난 반면 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아 마진이 반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휘발유 스프레드가 배럴당 8~10달러대를 넘나들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해 전체 정제마진의 하방 압력을 제어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상반기 국제유가 상승 덕분에 저유가일 때 사들였던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오르는 재고평가수익을 얻긴 했지만, 완전한 실적 회복을 위해 정제마진 개선을 기다려왔다. 특히 하반기에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정제마진이 본격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실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7월 보고서에서 3, 4분기 세계 일평균 석유수요를 각각 9823만배럴, 9982만배럴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5월 보고서 당시 예상치에 비해 각각 33만배럴, 8만배럴씩 늘어난 수준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석유 수요 전망은 다시 위축되는 추세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내놓은 8월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석유 수요를 일평균 9610만배럴로 예측했는데, 이는 지난 7월 보고서 전망치(일평균 9640만배럴)보다 30만배럴 낮춘 수준이다. IEA는 “6월 세계 석유 수요는 늘어났지만 7월에 수요 증가세가 꺾였다”며 “여러 주요 석유 소비 국가, 특히 아시아에서 이동과 석유 사용이 감소할 것으로 보여 하반기 (석유 수요) 성장률은 더 급격하게 하향조정됐다”라고 말했다. OPEC은 이달 중순쯤 9월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인데, 업계에서는 OPEC도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코로나19에 달린 정제마진의 흐름이 연말로 갈수록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은 코로나19 상황과 일치한다”며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될수록 이동량이 줄어들고 경제가 위축되기 때문에 정제마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백신이 꾸준히 보급되고 있고 언제까지 소비가 위축돼 있을 수만은 없다”며 “연말로 갈수록 조금씩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