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당연히 잠도 못 잤죠.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백신을 옮기는 일이었으니까요.”

지난 2월 26일 인천국제공항. 글로벌 특송회사 UPS를 통해 국내 첫 화이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도착했다. 국제 백신 공동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서 할당받은 11만7000회분(5만8500명분)이었다. 김도영 UPS코리아 사장이 공식 취임하고 이튿날이었다.

곧바로 미국 화이자로부터 직접 계약을 통해 확보한 백신 수송 계획을 짜야 했다. 통관 절차에 걸리는 시간은 어떻게 줄일지, 공항에서 최종 배송지까지 차량은 어떤 것을 쓸지,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은 충분한지 등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한달 뒤인 3월 24일 50만회분(25만명분)의 물량이 UPS 화물기로 국내에 들어와, 전국 23개 접종센터로 옮겨졌다. 김 사장은 “백신 운송과 관련된 모두가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당시엔 다들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김도영 UPS코리아 사장이 서울 영등포구 사옥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오은 기자

김 사장은 20년 이상 국내외 물류업계에서 일해왔다. 2000년 싱가포르 프리마켓(현 아리바)를 시작으로 CJ제일제당(097950), LG전자(066570)에서 공급망 관리(SCM) 등을 담당했다. 이후 글로벌 물류기업 세바로지스틱스에 합류했고 2015년 세바로지스틱스코리아 사장에 올랐다. 올해 UPS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김 사장에게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인 물류업계의 변화는 백신 수송처럼 새로운 일의 연속이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주문이 폭증하면서 물동량이 뛰는가 하면, 해상 운임이 1년만에 5배가량 폭증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예측보다 얼마나 빨리 현재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라고 평가했다. 또 제때 도착하는 정시성(定時性)이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다음은 김 사장과의 일문일답.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 물류업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기존 공급망(supply chain)의 화두는 ‘낭비 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였다. 쉽게 말해 불필요한 재고를 최대한 줄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안정성과 신뢰성이 더 중요해졌다. 물건이 제 때 도착하지 않을 수 있고, 이로 인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한 예로 지난 7월 국내 수출은 증가(29.6%)했는데, 중량 기준으로는 소폭 감소(0.3%)했다. 반면 항공화물 수송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국제 물류 상황이 일정을 신뢰하기 어려워지면서 빠르고 또 정확성을 기대할 수 있는 항공, 특송 수요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국가간 물동량이 성장세다.

“내부에서도 실감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수출 비중을 키워서 새로운 강자로 거듭나는 중소기업들이 눈에 띈다. 의류나 음반 등 업종도 다양하다. 5년 전만 해도 대기업이나 도입하려고 했던 IT(정보기술) 솔루션을 중소기업이 도입하고 특화해서 적용한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런 변화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 물류업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조짐으로 본다.”

-중소기업 물류가 성장성이 있다고 보는 건가.

“글로벌 물류량의 90% 정도를 중소기업이 차지한다. 국내는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해외 통관처럼 중소기업이 혼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물류 영역이 많다. 전문가의 컨설팅이 필요하다. UPS코리아는 지난 4월 전문 통관 컨설팅 조직을 만들었다. 무역을 시작하는 고객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목표다. 동반성장의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관련해 물류업무는 모두 UPS에 맡기고 생산·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디지털 액세스 프로그램(Digital Access Program)을 운영하고, 여러 판로를 통해 진행되는 물류 업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마켓플레이스 발송(Marketplace Shipping)과 같은 솔루션도 도입했다. 배송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마이초이스(My Choice)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UPS 직원들이 지난 3월 인천국제공항 UPS허브에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검수한 뒤 옮기고 있다. /UPS코리아 제공

-UPS가 화이자 백신을 국내에 처음 수송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백신 운송과 함께 콜드체인(Cold chain·저온 유통 체계) 능력 등을 증명할 수 있었다. 콜드체인뿐만 아니라 제약 물류는 폭넓고 다양하다. 특히 국내 바이오 생산업체들의 역량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필요한 물류 서비스도 확장되고 있다.

UPS코리아도 지난해 하반기 헬스케어 전문팀을 새롭게 구성해 유수의 제약업체들과 꾸준히 물류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또 UPS의 자회사 마켄(Marken)이 인천 서구 청라동에 콜드체인 저장시설을 오는 10월 완공한다. 본격적인 운영은 2022년 2월로 예정돼 있다. 협력해 고객들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UPS코리아는 1988년 한국에서 대리점 형태로 영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영업소 등 18개 시설과 물건을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액세스 포인트(access point) 22곳을 운영하고 있다. 주당 56편의 항공기가 UPS코리아의 물품을 싣고 오간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UPS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950억원을 기록, 2019년보다 26.1% 늘었다. 이런 성장의 중심이 ‘고객 경험’이라고 김 사장은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기적으로 배송기사와 함께 현장을 다닌다고 들었다.

“안전운전을 강조하기 위해 분기에 한 번씩은 배송기사와 함께 현장을 다닌다. 지난달에도 서울 금천구 독산센터 배송기사와 반나절가량 구로구와 경기 시흥시를 돌았다. 경력이 20년씩 된 분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고, 가장 선두에서 고객들을 만나는 만큼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번은 함께 동행했던 배송기사가 담당하는 의류업체로부터 ‘고맙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 업체가 국내 여러곳에서 공장을 운영하다보니 출고상황이 본사에서 관리하는 데이터와 맞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걸 우리 배송기사가 조율해서 성공적으로 해결해줬다고 한다. 이런 고객 경험들이 쌓이는게 자산이다.”

-고객 경험을 여러차례 강조하는데.

“당연하다. 고객이 있어야 우리도 존재한다. UPS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고객 우선(Customer-first)’이다. 고객을 우리 기준에 맞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개별 요구에 맞게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국내 인력이나 설비에 투자하는 것도 보다 나은 고객 경험을 위한 것이다.”

-UPS코리아의 목표는 무엇인가.

“글로벌 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쉽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