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034730)그룹 계열사들이 중장기 사업전략을 담은 파이낸셜 스토리 발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파이낸셜 스토리의 핵심은 기존 사업의 틀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수립했다는 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화한 ‘좋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이 수립 중인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평가 모델에서 파이낸셜 스토리가 상당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 역시 이들의 사업 재편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들이 하반기 들어 잇따라 파이낸셜 스토리를 공개하고 있다. 첫번째 주자는 지난 7월 1일 ‘스토리 데이’ 행사를 개최한 SK이노베이션(096770)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회사의 정체성을 정유업 등 탄소 사업에서 그린 중심의 사업으로 바꾸기 위해 5년간 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SK㈜와 SK머티리얼즈가 합병을 통해 첨단 소재 분야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을, SK종합화학은 사명을 SK지오센트릭으로 바꾸고 세계 최대 도시유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SK E&S는 지난 1일 간담회를 열고 세계 1위 수소사업자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23일 제주 디아넥스 호텔에서 열린 ‘2020 CEO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SK그룹 제공

SK그룹 계열사의 이같은 행보는 최 회장이 ‘좋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스토리란 기업의 매출·영업이익 등 재무 성과를 넘어 매력적인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이 담긴 기업의 비전을 뜻한다. 그는 지난 6월 열린 ‘2021 확대경영회의’에서 “반도체, 수소 등을 그룹 차원의 파이낸셜 스토리로 만들었을 때 시장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며 탄소중립 조기 달성을 SK그룹 차원의 파이낸셜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 중립을 얼마나 빠르게 달성하느냐에 그룹의 경쟁력이 걸려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SK그룹은 CEO 평가 및 연임 여부 결정 권한을 이사회에 부여하기로 하고 관련 작업을 추진 중이다. 지주사인 SK㈜가 기본 모델을 마련하면 각 계열사 이사회가 해당 산업 업황 등에 맞춰 세부 기준을 세우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 SK㈜ 사외이사진은 오는 10월 워크샵을 열고 CEO 평가 방안을 포함한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혁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SK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파이낸셜 스토리는 주주들에게 사업 목표를 제시하고 미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인만큼 CEO 평가 항목에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이 지난달 말부터 각 계열사 임원 평가 조사를 시작한만큼, 주요 계열사는 이미 파이낸셜 스토리의 하위 항목에 해당하는 ESG와 탄소중립 등을 CEO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는 작업을 마쳤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최근 CEO KPI에 넷제로와 ESG를 각각 10%씩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000660) 역시 “기후변화 대응은 CEO KPI 성과에 통합돼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017670)은 “2019년부터 CEO의 사회적 가치 KPI를 50%로 확대했다”며 “ESG 경영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이 강화됨에 따라 올해부터 경영진의 KPI에 ESG 경영항목을 포함해 평가하고 관련 항목들을 지속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10월 열리는 ‘CEO 세미나’를 위해 파이낸셜 스토리 마련에 서두르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 행사는 올해 CEO들의 경영 성과를 평가함과 동시에 내년에 실행할 큰 경영 화두를 정하는 자리다. SK 관계자는 “각 사의 파이낸셜 스토리가 완성돼 있으면 그룹 차원의 계획을 세우기에도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