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034730)가 반도체 소재업체 실트론(현 SK실트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는 혐의와 관련, 공정거래위원회가 위법성이 인정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SK 측에 발송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심사보고서에는 최 회장을 사익편취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제재안도 포함됐다. SK 측은 “최 회장이 당시 중국 등 해외 자본의 SK실트론 지분 인수 가능성 등을 고려한 뒤 채권단이 주도한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해 추가로 지분을 취득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SK는 향후 공정위 제재 수위 결정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적극 소명할 계획이다.

SK는 2017년 1월 LG(003550)로부터 실트론 지분 51%를 주당 1만8000원에 인수하고 그해 4월 잔여 지분 49% 중 19.6%를 주당 1만2871원에 추가로 확보했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가진 나머지 29.4%는 최 회장이 같은 가격(1만2871원)에 매입해 실트론은 SK와 최 회장이 지분 전부를 보유한 회사가 됐다.

하지만 SK가 30% 이상 가격이 떨어진 잔여 지분을 모두 사들이지 않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싼 값에 실트론 지분 100%를 보유할 수 있었는데, 19.6%만 추가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나머지 29.4%를 개인 자금으로 구입하도록 하면서 총수에게 막대한 이익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경제개혁연대는 2017년 11월 이 사안이 총수 일가 사익편취에 해당하는지 조사를 요청했고, 공정위는 2018년 조사에 착수했다.

SK 측은 최 회장이 공정 경쟁입찰을 통해 지분을 매입해 사익편취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실트론 잔여 지분이 중국 기업에 넘어갈 수 있던 상황에서 최 회장이 직접 나서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채권단은 SK 측에 채권단 보유 지분 29.4%와 KTB PE 보유 지분 19.1%를 묶어 매각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SK는 이미 LG를 통해 절반 이상의 실트론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라 추가 지분 확보 계획이 없었다. 이때 중국 기업이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 떠오르면서 SK의 고민이 깊어졌다. 30%에 가까운 지분을 인수할 경우 중국 기업이 실트론에 사외이사 등을 파견해서 경영에 깊이 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위기감 때문에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채권단 보유 지분 매입에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채권단은 자격 제한이 없는 공개 경쟁입찰로 잔여지분을 매각했기 때문에 최 회장이 지분을 인수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생산 업체다. SK는 2017년 실트론 인수 후 150㎜ 웨이퍼 사업에서 철수하고 300㎜를 증설하면서 주력 웨이퍼 사업을 전환했다. 이후 2017~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성장을 이어 갔다. 2017년 9331억원이었던 매출은 2018년 1조3462억원, 2019년 1조5429억원, 2020년 1조7006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실트론 매각 작업이 진행될 때만 해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예상하기 힘든 시기였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당시 실트론 잔여 지분 매각에는 중국, 일본, 대만 등 외국 기업만 관심을 보였을 뿐 국내 기업 중 인수를 희망한 곳이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으로 국내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던 시점”이라며 “국내 기업 중 실트론에 투자하겠다는 곳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나면서 SK실트론의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2018년 3803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19년 3310억원, 2020년 2490억원, 올해 상반기 1197억원으로 떨어졌다.

SK와 최 회장에 대한 제재 여부는 공정거래위원장을 포함한 9명의 위원이 참석하는 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공정위는 연내에 전원회의를 열 계획이다. 최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의 검찰 고발 여부도 전원회의에서 결론난다. SK는 최 회장의 사익편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전원회의에서 공정위와 SK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전원회의에서 위법성이 인정되면 SK는 최 회장 지분인수 취득가액의 최대 10%인 250억원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전원회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을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