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된 두산인프라코어가 현대두산인프라코어라는 사명으로 새 출발한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소속이 바뀌고도 ‘두산’이라는 명칭이 유지될 예정이라 새 상호에 관심이 쏠린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다음 달 10일 주주총회를 열고 사명을 ‘현대두산인프라코어’로 변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과 ‘두산(DOOSAN)’ 브랜드 상표권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이달 19일부터 2022년 8월 18일까지 1년간 ‘두산’이라는 상표권을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사용료로 160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사용료는 해당 기간 예상 매출액에 따라 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1일~2023년 12월 31일까지로 체결했던 517억원 규모의 기존 두산 상표권 사용 계약은 해지됐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후 첫 일정으로 지난 20일 인천공장을 방문한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왼쪽)이 손동연 사장에게 '현대정신'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주인이 바뀌고도 두산인프라코어가 기존 사명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는 국내외 건설기계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브랜드 가치가 현대중공업그룹 소속 현대건설기계보다 높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건설기계업계 1위 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100%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세계 건설기계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시장 점유율은 상당한 수준이다. 영국 건설중장비 전문지 KHL의 ‘옐로우 테이블’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241560) 포함)의 지난해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 점유율은 3.7%로 10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기계의 점유율은 1.2%로 21위였다.

국내 시장에서도 두산인프라코어의 점유율이 더 높다. 굴착기 등 국내 건설기계시장 점유율 1위인 두산인프라코어는 30~40%를 차지하고 있는데, 현대건설기계는 20~30% 정도로, 스웨덴 기업 볼보건설기계(약 20%)와 2~3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업평판연수가 건설기계 상장기업 95개 브랜드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브랜드 평판 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두산인프라코어가 2위, 현대건설기계는 6위였다. 이 조사는 브랜드에 대한 긍·부정 평가, 미디어 관심도, 소비자끼리 소통량 등을 측정해 분석됐다.

물론 현대중공업그룹이 정체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사명을 바꿀 가능성도 있지만, 당분간은 두산인프라코어 사명을 그대로 둔 채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2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본계약 체결 당시 “각 법인의 독립경영 체제를 지원한다”고 강조했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위)와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아래)에 설치된 골리앗 크레인의 모습.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제공

앞서 현대중공업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외에도 인수 기업의 브랜드를 유지한 선례가 많다. 현대삼호중공업이 대표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02년 5월 삼호중공업을 인수해 다음 해 1월 사명을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꿨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처럼 ‘삼호’라는 사명을 유지하면서 그룹을 대표하는 ‘현대’를 더한 것이다. 당시 회사 측은 사명 변경 배경에 대해 “현대계열사로서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회사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한국조선해양)과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도 인수 후 대우라는 브랜드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대우조선’, ‘현대대우중공업’ 등이 변경될 사명 후보로 거론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2년이 넘게 합병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를 합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1%까지 올라가는 데다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기업결합심사가 지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잇따른 대형 인수로 그룹 안에는 현대, 삼호, 대우, 그리고 두산 등 각종 기업 브랜드가 공존하게 됐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이전 그룹의 이름을 떼겠지만, 인수기업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네임밸류가 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는 게 국내외 영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