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001040)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097950) 부장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유했던 서울 중구 장충동 주택을 매입한 가운데 범(凡) 삼성가의 연이은 장충동 부동산 매입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장은 최근 이건희 회장이 소유했던 서울 장충동 1가의 저택을 196억원에 사들였다. 이 저택은 대지 면적 2033㎡, 연면적 901㎡ 규모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2년 설원식 전(前) 대한방직(001070) 명예회장의 부인인 임희숙씨 소유 단독주택이던 이 건물을 대한자산신탁을 통해 350억원에 매입했다.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유족들은 12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이 부장에게 해당 주택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부동산 매입은 이 부장이 범 삼성가 종손이라는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인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장충동은 삼성의 ‘본가’라고 불릴 정도로 범 삼성가에 의미가 깊은 지역이다. 이병철 창업주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삼성그룹, 신세계(004170)그룹, CJ그룹, 한솔그룹 등 범삼성가 오너 일가들은 일대 부동산을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과거 삼성그룹과 CJ그룹이 수년간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장충동 일대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부동산 가격이 뛰기도 했다. 두 그룹은 현재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체제에서 화해 분위기에 접어든 상태다. 이 부장이 이건희 회장의 주택을 사들인 것 외에도,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지난 4월 이 회장이 소유했던 장충동 주택을 CJ문화재단에 기증했다. 기증된 집은 이 부장이 사들인 주택과 마주보고 있는데,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1953년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살던 삼성가의 종가같은 곳이다.
이병철 회장 고택과 50m 거리에 있는 빌라에는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남매가 모친인 손복남 CJ제일제당 경영고문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빌라와 담벼락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다른 빌라에는 이병철 창업주의 장녀인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삼남 조동길 회장 등 한솔그룹 오너 일가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 빌라와 닿아 있는 두 필지는 삼성그룹 산하의 호텔신라(008770)가 소유하고 있다.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딸인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그룹은 장충동 족발집 거리가 밀집한 일대로 눈을 돌렸다. 이곳에는 신세계건설 본사가 있었는데, 2013년부터 일대의 개인 소유 부지와 국유지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명희 회장 역시 다른 범 삼성가처럼 장충동 일대에 대한 애착이 커 직접 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동 부지는 이마트(139480)가 그룹 연수원을 개발할 계획으로 매입해뒀지만, 인허가 지연으로 건립 계획 자체가 지연되면서 연수시설 건립이 7년간 미뤄졌다. 그러던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사업 허가를 받고, 신세계건설 본사가 남대문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다만 이마트의 재무적 여력이 약화돼 이 부지를 신세계에 양도하면서 사업 주체가 바뀐 상태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도 숙원사업인 장충동 한옥호텔 건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장충동에 있는 호텔신라 영빈관과 면세점 부지에 전통한옥 호텔과 면세점을 포함해 장충단 근린공원, 지하주차장을 짓는 사업으로, 이 사장은 취임 당시인 2010년부터 한옥호텔 건립사업을 구상해왔다. 다만 인허가 과정에 약 10년이 소요됐고, 지난해에야 착공에 들어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공사가 중단됐다. 호텔 완공은 2024년 5월로 예정돼 있다.
서울 장충동은 주변 산세가 마치 진을 치고 있는 주둔지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어 풍수지리 학자들은 이곳을 ‘장군이 지휘하는 장군대좌형의 명당’으로 꼽는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오너들의 자택을 비롯해 사무실, 사업지 선정 때도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삼성가 ‘뿌리’인 동네이기에 정통성과 관련한 자존심 경쟁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