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 원지 가격 인상으로 국내 골판지업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등 제지업계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지업계에서는 원지 주재료인 국산폐지의 단가가 폭등하는 동시에 환경부의 엄격한 폐지수출입신고제 시행으로 해외 저가 고지(폐지)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골판지 원지 가격이 오른다고 보고 있다.

폐지는 골판지원지·백판지 등 산업용지를 비롯해 신문용지(인쇄용지)와 화장지(위생용지) 등에 골고루 쓰이는 주원료다. 제지업체들은 국내산과 일부 수입산 폐지를 섞어 종이를 생산한다. 특히 수입 폐지는 국산 폐지에 비해 높은 강도를 유지해 전자제품 등을 포장하는 데 쓰이는 고급 골판지 제조에 필수적인 원료로 꼽힌다.

한 골판지업체 공장에서 관리자가 골판지를 운반하고 있다. /조선DB

12일 환경부·제지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폐지(폐골판지) 전국 평균 가격은 ㎏당 138.3원으로 지난해 7월 63원보다 배 이상 올랐다. 2년 전인 2019년 7월 62.9원이던 폐지 가격은 2020년 3월 55.6원으로 떨어진 뒤 상승하기 시작했다. 폐지 가격은 올해 4월에도 97.9원이었지만, 이후 3개월 만에 41% 넘게 급등했다.

수입산 폐지 가격 역시 급등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7월 폐지수출입신고제를 시행한 이후 폐지(폐골판지) 수입 단가는 지난해 8월 톤(t)당 178달러에서 지난 6월 255달러로 약 43% 증가했다. 폐신문지도 같은 기간 146달러에서 218달러로 49%가량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지업계는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생산업체들이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국산폐지의 단가가 폭등하고 있는데, 폐지 수출입이 신고제로 바뀐 뒤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충분한 폐지를 수입하기 힘들어졌고 수입단가도 올랐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기준 폐지 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 감소했으나 수출은 29.8% 늘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폐지수출입신고제 시행 이후 국내 가격 대비 30% 이상 높은 가격의 일부 수입 고지만 수입이 가능하게 되면서 국산폐지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했다”며 “여기에 환경부의 예상과 달리 중국으로의 폐지 수출 대신 동남아 등으로의 국산폐지 수출이 30%나 증가하면서 국산폐지 가격이 급등했다”라고 말했다.

한 폐기물 재활용센터에 압축된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이 적재된 모습.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골판지 원지 생산업체들과 이를 가공해 완제품인 박스를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아진피앤피, 태림페이퍼 등 원지 생산업체들은 주재료인 폐지 물량 감소와 이로 인한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원지값을 잇달아 인상했다. 골판지 원지 가격은 지난해 10월엔 약 25% 올랐고 올해 3월에도 12~15%가량이 인상됐다.

그러나 원지를 받아 종이박스를 만드는 관련 업체들은 잇따른 가격 인상이 골판지 산업의 맨 마지막에 있는 영세 박스제조 업체에 부담을 전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골판지 원지 수요처인 포장업체들이 모인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은 최근 “골판지 원지가격 인상 통고를 즉각 중단하고, 포장업계 및 박스업계와 상호협력해 가격인상의 원인이 되는 폐지의 수급 및 가격 안정화에 선제적 노력을 다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원지 제조기업들에 보내기도 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폐지 수출입 신고제 시행을 예고했을 때부터 업계에서는 폐지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를 꾸준히 전달했지만 환경부는 이를 외면했다”면서 “폐지를 폐기물이 아닌 국내 재활용 산업의 원자재라는 관점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폐지를 수출하거나 수입하려면 폐기물 처리 및 운반계획서, 유해물질 분석 결과서 등을 첨부해 지방 환경청장에게 신고해야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시행했다. 오는 2030년까지 폐금속류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모든 폐기물의 원칙적 수입금지가 목표다. 그전까진 폐기물 수입신고에서 폐지는 면제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