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됐지만, 사면이 아니어서 운신의 폭은 제한될 전망이다. 가석방 신분으로는 5년간 취업 제한에 걸려 경영 현장 복귀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이후 거론되던 이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도 언제 이뤄질지 관심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8·15 광복절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 이 부회장은 오는 13일 오전 출소한다. 이 부회장은 2017년 초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에도 한달여간 칩거한 바 있어 이번에도 당장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난만큼 신중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가석방은 남은 형기 동안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 조건으로 풀어주는 조치로 해외 출장이 제한되고 향후 5년간 취업 제한이 적용된다. 이 부회장의 형 집행 종료일은 2022년 7월인만큼 원칙적으로 2027년 7월 이후에 취업 제한이 풀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조선DB

일각에서는 취업이 제한된다 해도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규 취업에만 취업제한 규정이 적용될 뿐 기존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 이 부회장은 2017년부터 무보수로 일하고 있는데다 2019년 10월 등기이사직까지 내려놓은만큼 취업제한 규정과는 관련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3년 최태원 SK(034730) 그룹 회장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 450억원 횡령으로 유죄가 확정됐을 때 “무보수로 재직 중”이라며 취업이 아니라는 논리로 회장직을 유지한 바 있다.

현 상태에서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대상에서 풀려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법무부 장관의 취업제한 대상 예외 승인을 받는 것이다. 과거 김정수 삼양식품(003230) 사장도 49억원 횡령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이사직을 상실했지만, 추후 법무부 승인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이에 재계는 삼성전자가 취업 승인을 신청할지 주목하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취업승인 신청이 들어오면 심의 절차에 따라 조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계는 현재 이 부회장 앞에 놓인 과제가 산적한만큼, 법무부의 취업승인을 얻지 못한다 해도 연내 경영활동에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왔던 것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적시에 대응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에 삼성전자가 나서줘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라며 “경영활동을 위한 각종 장애물이 제거돼야만 사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이후 거론되던 이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 작업이 언제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선대 회장이 타계한 이후 20여일 뒤인 12월 1일 회장에 올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98년 8월 26일 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이 별세한지 7일 만에 취임했다. 구광모 LG(003550) 회장 역시 구본무 LG 회장 타계 이후 한달가량 뒤에 회장에 선임됐다. 4대그룹 총수 중 이 부회장만 ‘부회장’ 직함을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