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이 한진그룹 계열사인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272450)로부터 조종사 파견을 추진 중이다. 항공 화물 수요가 급증하면서 B777 등 대형 화물기를 운항할 인력이 부족해졌다는 이유에서다.
3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최근 진에어로부터 B777 기종 조종사들을 파견받기 위해 조종사 노조와 협의에 들어갔다. 사측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여객 사업이 악화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화물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데, 대형 화물기를 운항할 조종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그룹 계열사인 진에어로부터 파견 형식으로 B777 기종 조종사 최대 10명을 데려와 화물 노선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진에어 소속 B777 기종 조종사 39명은 현재 비행을 쉬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사의 B777 여객기에서 발생한 플랫앤휘트니(PW) 엔진 문제로 국토부에선 동일 계열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 운항을 금지한 상태다. 진에어가 보유한 B777 4대 모두가 해당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해당 엔진을 탑재한 항공기 16대를 제외해도 여전히 38대가 운항이 가능하다.
다른 기종을 운항하던 조종사를 투입할 수도 없다. 기종별로 운항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기종을 운항하던 조종사가 B777 기종을 몰기 위해선 기종 전환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 6개월이 소요된다. 당장 이달부터 기종 전환 훈련에 들어가도 내년 1월은 돼야 마무리되는 셈이다.
대한항공이 B777 기종 조종사가 부족한 배경에는 항공 화물 사업을 비중을 확대한 데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대한항공이 실어나른 화물의 양은 작년 2분기 대비 27% 늘어난 41만7759톤(t)이다. 여객기까지 화물기로 개조해 화물 노선에 투입하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21% 수준이던 화물 사업 매출 비중은 현재 77%까지 높아졌다. 특히 화물 사업 매출의 절반 이상이 B777 등 대형 항공기가 필수인 미주·유럽 노선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연간 비행 제한 시간은 1050시간(편승 시간 포함)이다. 현재 대한항공 B777 내국인 조종사 366명 가운데 27%가 연간 비행 제한시간이 육박한 상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특히 B777이 투입되는 장거리 노선은 ‘기장 2명·부기장 1명(2C1F)’ 편조로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노선 대비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하반기는 특히 블랙프라이데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가 있어 물동량이 급증하는 화물 성수기로 꼽힌다. 여기에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세계 항만 곳곳에서 입항을 통제하면서 항공 화물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하반기 화물 수요를 고려할 때 B777 조종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선 대한항공이 올해 2분기에도 화물 수송량이 전 분기 대비 1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내부에선 코로나19 여파로 일부 기종 조종사들이 수개월째 휴직 중인 상황에서 타사 조종사를 데려오겠다는 회사의 계획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항공의 한 조종사는 “오래전부터 기종 전환 훈련을 통해 대형 기종 조종사들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사측이 듣지 않았다”라면서 “10년 이상 승급만을 기다려온 부기장들 입장에선 납득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종 전환 훈련을 통해 대형 기종 조종사 늘려가고 있다”며 “진에어 운항승무원 파견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