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친환경 사옥'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건물의 옥상이나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력을 자체 생산하고, 사옥 건설 자금 조달에도 ESG채권을 활용하고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LG(003550)그룹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내 20개 연구동 중 18개 동의 옥상과 산책로에 태양광 모듈 8300여개를 설치했다. 400가구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4㎿(메가와트) 용량의 에너지저장장치(ESS)도 갖췄다. 심야에 전기를 저장해 두고, 전력소모가 집중되는 피크타임에 꺼내 쓰는 방식으로 에너지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LG는 사이언스파크 내에 2024년 완공을 목표로 4개 동을 추가로 올리는 2단계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녹색건축 인증제도 ‘우수’ 등급을 받았다. 녹색건축물 인증제도는 정부가 건축물의 설계 단계에서 ▲토지이용 및 교통 ▲에너지 및 환경오염 ▲물순환 관리 ▲재료 및 자원 ▲생태환경 ▲유지관리 ▲실내환경 ▲주택성능 등 8개 분야에서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지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다. 우수는 총 4개 등급 가운데 두번째로 높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전경. /LG전자 제공

앞서 완공된 1단계 건축물인 6개동도 같은 등급을 받았다. 2단계 건축물엔 지난 5월 LG전자(066570)가 발행한 5300억원 규모 회사채 가운데 첫 ESG 채권인 녹색채권으로 조달한 자금(1900억원)이 사용된다.

지난해 상반기 미국 뉴저지주(州)에 새로 지은 북미법인 신사옥도 최근 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지정한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 ‘리드(LEED·Leadership in Energy & Environmental Design)’의 최고등급인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총 3억달러를 투자한 신사옥은 대지면적 약 11만제곱미터(㎡), 연면적 6만3000㎡ 규모다. 신사옥 주변에 1500여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건물 옥상에는 고효율 태양광 모듈을 설치했다. 이외에도 경남 창원시에 짓고 있는 스마트팩토리는 ESS 고효율 공조시스템 등 친환경 에너지 설비 등을 갖출 예정이다.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한화 제공

한화(000880)그룹은 1987년 건립된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을 2016년 3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리모델링해 태양광을 사용하는 친환경 건물로 재탄생시켰다. 한화빌딩 남쪽과 동쪽 외관에 설치된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 시스템(BIPV)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PV)은 하루 약 300KWH(킬로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한다. 한화 직 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 조명 전력을 태양광 발전으로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한화큐셀의 태양광 발전 기술이 활용됐다.

사실상 도심 속 ‘태양광 발전소’라 할 수 있는 이 사옥은 지난달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가 주최한 ’2021 톨 어반 이노베이션(Tall+Urban Innovation)’ 콘퍼런스에서 리노베이션 부문 대상을 받았다. 1969년 미국에서 설립된 CTBUH는 초고층 도시 건축과 관련한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단체로, 매년 콘퍼런스를 개최해 우수한 건축물을 선정한다. 올해 CTBUH가 선정한 29개 부문 대상작 중 국내 건축물은 한화빌딩이 유일하다. CTBUH는 태양광 패널을 접목한 친환경 빌딩이라는 혁신성, 효율성, 지속가능성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롯데지주(004990)롯데정밀화학(004000), 롯데케미칼(011170) 등 롯데 주요 계열사가 입주해있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는 연간 1만7564㎿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약 65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양과 맞먹는 규모다. 이 건물은 물과 외부 공기의 온도 차를 활용한 수열 발전시스템을 비롯해 풍력발전, 태양광 발전, 중수 및 우수(빗물) 재활용, 연료전지 설치, 생활하수 폐열 회수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한 위원단이 에너지센터에서 수열에너지 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물산 제공

GS건설(006360) 사옥인 서울 종로구 청진동 그랑서울과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코오롱(002020)의 원앤온리타워도 친환경 건축물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랑서울은 건물 외관에 커튼월 유리를 적용하고, 최첨단 빌딩 에너지 관리시스템(BEMS)을 갖춰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있다. BEMS 설치로 기존 대비 약 15%의 에너지를 절감했다. 친환경 건축용 소재로 유명한 원앤온리타워는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가 개발한 강화섬유플라스틱으로 만든 차양 시스템이 태양 복사열 유입을 최소화해준다. 또 태양광과 지열 발전설비도 갖춰 건물 내 공용공간에선 모든 필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넷 제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들이 이같이 친환경 사옥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급부상한 ESG를 평가하는 기관들이 친환경 사옥이나 설비를 갖춘 기업에 가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도 보탬이 된다는 분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ESG 평가기관들은 에너지 소비량, 탄소 배출량 등을 매년 점검해 저감량이 큰 기업에 높은 점수를 주는데 친환경 설비를 갖춘 건물은 가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사옥은 주요 거래처 등을 만나는 장소인 만큼 친환경적인 건물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