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가 ‘수주 랠리’로 도크(dock·배를 만드는 건조장)를 채우면서 이번엔 대규모 인력 채용에 나섰다. 장기간 불황과 주52시간제 도입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기술 인력을 다시 모으고 있다.
2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오는 27일까지 기술연수생 120명을 모집한다. 당초 100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으나 선박 수주가 이어지면서 모집 인원을 늘렸다. 기술연수생 과정은 9월부터 12월까지 울산 조선소에서 실기와 이론 교육을 무료로 받으며 연수 기간 훈련 수당 등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과정을 수료하면 협력사 취업 지원과 본사 생산 기술직 채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삼성중공업(010140)도 다음달 8일까지 협력사 직업기술생을 모집한다. 용접과 선박 도장 부문 인력이다. 사내 교육기관에서 1~2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대우조선해양은 수년 만에 해양플랜트 부문 인력 채용을 시작했다. 다음 달 8일까지 배관, 전장, 기계, 선실, 선장 등 5개 분야와 사업관리 부문 경력직을 모집한다.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 기간을 갖는 촉탁직이다. 특히 이번 채용은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와 해상풍력발전기설치선(WTIV) 등 에너지플랜트 설계 경험자를 우대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장기간 해양플랜트 물량이 없었던 만큼 관련 인재 채용은 수년 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해양플랜트 물량을 수주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계가 인력을 늘리는 배경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선박 발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조선 3사는 2년 치 이상의 건조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한국조선해양은 7개월여 만에 올해 수주 목표 149억달러(약 17조원)의 113%를 수주해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목표 달성률도 각각 71%, 80% 수준으로 하반기 중 무난하게 목표치를 채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1일 컨퍼런스콜에서 “당분간 (수주) 호조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올해 말 카타르 LNG선 발주가 예상되고 내년부터 해양플랜트 발주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주가 이어지면서 내부에선 배를 건조할 인력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장에선 “도크는 채웠는데 정작 배를 만들 사람은 없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 3사 직접 고용 인력의 경우 2016년 말 4만6235명에서 2020년 말 3만2748명으로 5년 사이 약 30%(1만3487명) 줄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는 3만1522명으로 3개월 사이 약 3.7%(1226명)가 감소했다.
협력사의 인력 사정은 더 어렵다. 통상 선박과 해양플랜트 건조에 투입되는 인력의 80~90%는 협력사 근로자들이 차지한다. 그러나 장기간 이어진 조선업계 불황과 올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겹치면서 기술 인력 상당수가 조선업계를 떠난 상황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연장근무 및 특근으로 부족한 임금을 채웠던 인력들이 더이상 추가 근무가 어렵게 되자 수도권 대형 공사 현장으로 떠났다”라며 “새로 들어오는 인력보다 나가는 인력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올해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 3사와 중소형 조선사들이 올해 3월 말 수주 물량과 내부 인력을 바탕으로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울산, 경남, 부산, 전남 등지에서 ▲올해 4분기 199명 ▲내년 1분기 3649명 ▲내년 2분기 5828명 ▲내년 3분기 8280명 ▲내년 4분기 7513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력 부족 현상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국내 최대 조선소가 있는 울산으로, 내년 3분기 최대 5972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다만 연간 수주 목표치를 대부분 달성한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필요 인력은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친환경 선박 개발을 맡을 연구개발(R&D) 인력도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 8월 특허청이 발표한 ‘조선분야 기술·특허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조선분야 연구인력은 1738명에서 822명으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기업체 연구원 수가 30만4808명에서 36만8237명으로 약 20.81%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기간 조선분야 연구개발비도 3855억원에서 1418억원으로 약 63.22% 감소했다.
조선업계는 인력 수급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 업체 관계자는 “추가 근무가 가능했던 과거에는 잔업 수당이 상당했던 만큼 노동 강도가 세도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라며 “지금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벌이가 줄면서 상당수 인력이 다른 업종으로 빠져나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업종에 대한 외국인 근로자 채용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수주 랠리'도 소용이 없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