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예비전력이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예년보다 한 달 이상 일찍 안정권을 벗어난 셈이다. 체감온도 40도에 이르는 폭염에 산업용 전력 수요까지 상승한 가운데 탈원전 여파로 전력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최악의 경우 2011년 9월 순환정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에 산업계는 조업 시간을 조정하고 자체 발전기를 준비하는 등 생산 차질을 방지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한 달 빨리 찾아온 전력난… 탈원전 여파에 수요 대응 ‘역부족’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는 이번주 전력 공급 예비력이 4.0~7.9기가와트(GW), 예비율은 6~7%대로 떨어져 전력 수급의 첫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1년 대정전 당시 최저 예비력(3.43GW)에 근접한 수준이다. 예비력은 전력 공급량에서 현재 수요를 제외한 것으로 10GW를 넘어야 안정적인 수준으로 본다. 예비율 역시 10% 이상을 유지해야 발전기 고장 등 돌발 사고로 인한 대정전에 대비할 수 있다. 지난 12~16일의 경우 예비력은 10GW 아래로 떨어졌고, 예비율도 10.1~11.8%에 그쳤다.

연일 지속하는 찜통더위에 냉방기기 사용이 늘어난 지난 14일 오후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상황실에서 직원이 전력수급 현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여름 공급 예비 전력이 10GW를 밑돌기 시작한 시점은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빨랐다. 지난해의 경우 8월 25일에 처음으로 10GW 밑으로 떨어졌다. 때이른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컸다. 이번주는 더욱 강력한 폭염이 예고되고 있다. 이날 기상청은 전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30도를 넘고, 습도도 높아 서울의 체감온도는 34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0일 이후엔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고, 밤 최저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 기조로 산업 생산량이 증가한 점 역시 역시 전력 수요를 부채질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119.6테라와트시(TWh)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 5월만 놓고보면 24.0TWh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수요 급증에 맞춰 전력이 탄력적으로 공급돼야 하지만, 현재 에너지 정책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탈원전 여파로 전력 공급 여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5년 수립된 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르면 현재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호기, 월성 1호기 등 원전 4기가 추가 가동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원전 총 24기 중 8기가 정비 중이고, 완공 15개월만인 최근에 운영 허가를 받은 신한울 1호기는 내년 3월에야 상업 운전이 시작된다. 내년 11월까지 가동하기로 했던 월성 1호기는 2019년 조기 폐쇄됐다. 정부가 원전 승인을 이유없이 지연하고 정비 기간을 연장한 탓에 전력 공급 부족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산업계, 생산 차질 방지 위해 자체 발전기·ESS 적극 활용

최악의 경우 일시에 전기가 끊기는 대정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순환정전 상황이 닥칠 수 있다. 2011년 9월에도 예비율이 5%대로 급락하자 정부는 일부 지역의 전기 공급을 순차적으로 중단하며 전력 부하를 조절하는 순환정전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당시 전국 212만가구의 전기가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산업계는 정전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종 대책을 실시 중이다. 집중 휴가제를 실시하고 조업 시간을 조정하는 한편, 자체 발전 설비를 통해 전력난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현대제철 제공

철강기업 중 전기로를 운영하는 현대제철(004020)동국제강(460860)의 경우 한국전력(015760)의 요청에 따라 생산 가동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에너지저장설비(ESS)를 각 사업장마다 배치했고, 소규모이지만 내부 소비 전력 생산을 위한 태양광 설비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ESS가 있으면 전기요금이 저렴한 심야에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낮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다.

정유업계는 전력난이 닥칠 경우 자체 발전기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GS칼텍스는 “비상시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발전기를 추가로 가동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모터 대신 스팀을 사용하는 터빈으로 동력시설을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전체 공정 전력 수요의 40%까지는 자가발전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은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전력 부하가 많은 설비의 사용량을 조절하는 전력피크제어를 실시하고 있다. 또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정전을 대비해 10메가와트(㎿) 규모의 비상발전소와 ESS를 운영 중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다음주부터 2주간 집중휴가제에 들어가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에너지 사용 등 전력 비상체제도 함께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주요 기업들에 전력 사용이 최대일 때 수요를 조절하거나 자체 발전 시설을 활용하는 수요 반응(DR) 제도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전력거래소가 전기 사용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면 중간에 이를 관리하는 수요관리사업자가 공장이나 상업시설, 제조시설 등 참여 기관에 감축을 요청하고, 참여 기관이 이를 받아들이면 그에 맞게 정산금을 받아 분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