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화학기업인 삼영화학이 부자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창업자인 이종환(99) 명예회장이 장남인 이석준(69) 대표의 경영 방침에 불만을 제기하면서다. 이 명예회장은 이 대표에게 최악의 경우 민형사 소제기는 물론 전문경영인 도입을 추진한다고 경고했다. 회사는 이 명예회장이 삼영화학의 계열사인 삼영중공업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허위·음해 정보를 살포하고 있다며 맞대응을 예고했다.
19일 매일경제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은 이 대표에게 “정도(正道) 경영을 하지 않으면 부자간 소송이나 경영권 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명예회장은 1959년 삼영화학을 창립한 인물로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인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만들었다. 삼영화학은 필름형 박막 콘덴서 소재인 캐파시타 필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업체다.
삼영화학은 현재 전기·수소차에 들어가는 2.3μ(미크론) 초박막 커패시터 필름을 정부 지원과제로 인정받아 개발 중이다. 이 명예회장은 삼영화학이 2.3μ급 필름 개발에 사실상 실패해 신뢰성 위기에 내몰렸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그는 “이 대표가 비현실적인 경영 목표에 집착하고 신기술 개발 실패를 숨기면서 시장을 호도하고 있다”며 본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달 안에 민형사 소제기는 물론 전문경영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영화학은 이 명예회장의 주장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2.3μ급 필름 개발에 대해 삼영화학 관계자는 “국내 기술력 1위를 달리는 A업체와 오래 전부터 협력해 테스트와 검증 절차를 진행해왔다”며 “개발은 마무리됐고 언제 (생산을) 시작할지만 남은 상황이라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삼영화학은 이 명예회장 측이 갈등을 키우는 것은 결국 삼영화학의 계열사인 삼영중공업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보고 있다. 플랜트 제작 및 선박용 엔진부품을 제조하는 삼영중공업은 삼영화학이 지분 37.5%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고, 이 대표가 36.25%로 2대 주주다. 이 외엔 이 명예회장과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 각각 22.5%, 3.75%를 보유하고 있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 2008년 재단에 사재를 출연하기 위해 삼영화학과 다른 회사의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했지만 삼영중공업은 남겨두고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삼영화학 관계자는 “이 명예회장 측은 삼영중공업을 계속 경영하길 원했지만, 임기가 만료돼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경영진을 뽑아야 한다고 하니 이렇게 갈등을 키운 것”이라며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초고령의 명예회장 뒤에는 일부 재단 관계자들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삼영중공업은 오는 23일 주주총회를 연다. 이 명예회장과 이 대표간 합의가 없을 경우, 양측은 삼영중공업에서 표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다. 삼영화학 측은 “2014년부터 고령으로 인해 이 명예회장의 경영 참여를 만류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며 “지금까진 이 대표 측이 대응하지 않았지만, 경영권 분쟁까지 불거질 양상을 보이는 만큼 법적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