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전북 완주군에 있는 일진하이솔루스 공장은 현대차(005380)의 수소자동차 ‘넥쏘’에 들어가는 수소 연료탱크 생산이 한창이었다. 수소를 담는 플라스틱 통(라이너)을 실타래처럼 탄소섬유가 감았다. 라이너를 둘러싼 탄소섬유의 두께가 20㎜ 이상이 될 때까지 3시간가량 작업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탄소섬유를 총 1만번 감는다고 한다. 김영주 공장장은 “라이너를 뽑아낸 뒤 탄소섬유로 어떻게 얼마나 감느냐, 이 두 단계가 수소 연료탱크의 품질을 사실상 결정한다”며 “지금까지 약 6만개의 수소 연료탱크를 공급하면서 한번도 클레임(불만제기)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음달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는 일진하이솔루스는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타입4’ 수소 연료탱크를 양산하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일진다이아(081000)가 지분 86.95%를 갖고 있다. 가장 발전된 형태의 수소 저장기술로 꼽히는 ‘타입4′는 해외기업 중에서도 일본 도요타정도만 양산에 성공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확보,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를 늘려 기술 격차를 더 벌려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 안정성·기술력으로 드론부터 선박까지 맞춤형 수소 연료탱크 개발
일진하이솔루스는 기술력, 특히 안정성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제조보다 더 오랜 시간을 안전 검사에 쓴다. 모든 생산제품을 대상으로 내압 테스트, 기밀 테스트 등을 진행한다. 내압 테스트는 수소 연료탱크의 사용압력보다 4.5배 압력의 물을 넣어 물이 새거나 연료탱크가 손상되는지 살피는 과정이다. 기밀 테스트는 고압이나 저압의 가스를 넣어 새는게 있는지 측정하는 절차다. 아예 수소 연료탱크 200개당 2개씩을 파괴 실험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김 공장장은 “수소 연료탱크에 물을 넣고 빼는 과정을 1만5000번까지 반복해 장기간 사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점검해봤다”며 “요구되는 안전 기준보다 늘 더 엄격한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진하이솔루스 공장에는 다양한 크기의 수소 연료탱크가 쌓여있었다. 현대차 넥쏘에는 1개당 2.1㎏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연료탱크가 3개 들어간다. 한번 충전 후 주행거리는 600㎞가량이다. 현대차의 수소버스에 공급하는 연료탱크에는 5㎏의 수소를 담을 수 있다. 이런 연료탱크 5개가 하나의 모듈로 구성된다.
차량만이 아니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수소 드론에도 일진하이솔루스의 연료탱크가 쓰인다. 0.2㎏의 수소를 저장해 2시간 가량 날 수 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삼성중공업(010140)에서 건조하는 수소 연료전지 선박에 고압 수소 연료탱크를 공급할 계획이다. 대형 컨테이너선에는 12.5㎏의 수소를 담을 수 있는 연료탱크가 100개가량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장기적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에도 수소 연료탱크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홍상 일진하이솔루스 대표는 “오랜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만큼 요청에 맞춰 빠르게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며 “최근 유럽의 상용차 업체들에게도 협업 등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최초 타입4 수소튜브트레일러 출시… 인프라는 과제
일진하이솔루스는 이날 국내 최초로 타입4 수소튜브트레일러도 선보였다. 수소튜브트레일러는 수소를 생산지에서 충전소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금속제로 만든 ‘타입1’ 수소튜브트레일러가 쓰인다. 총 무게가 40톤, 길이가 16m가량이다. 도심지에서는 회전이 어렵고, 서울의 경우 한강 다리도 건널 수 없다. 도심 내 수소충전소 신설에 걸림돌 중 하나였다
탄소섬유나 플라스틱을 활용한 타입4 수소튜브트레일러는 무게 26톤, 길이 10m로 타입1보다 작고 가볍다. 도심 내 주행에 문제가 없다. 강도는 오히려 금속제보다 더 튼튼하다는게 일진하이솔루스의 설명이다. 특히 저장용량이 기존 300㎏에서 500㎏으로 늘어, 수소 충전소의 하루 필요량(500kg)을 차량 1대로 채울 수 있다. 기존의 200bar(기압)보다 높은 450bar까지 견딜 수 있어서다. 현재는 하나의 충전소에 수소튜브트레일러가 2~3대 필요한데, 타입4 수소튜브트레일러는 1대면 된다.
수소 충전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유리하다는게 일진하이솔루스의 설명이다. 수소차 넥쏘를 기준으로 보면 충전을 할 때는 수소를 700bar 이상으로 압축해야 한다. 타입1 수소튜브트레일러는 200bar로 압축한 수소를 충전소에 공급, 충전소에서 수소압축기(compressor)을 이용해 2차례 재압축해야 700bar 이상의 수소를 만들 수 있다. 반면 충전소에 450bar로 압축한 수소가 들어오면 한차례만 재압축하면 된다. 그만큼 충전소 보급절차가 간편해질뿐더러, 재압축 과정에서 수소압축기가 손상되는 사례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 수소 충전소 등 인프라가 200bar 기준으로 설치돼 있는 점은 넘어야 할 과제다. 안 대표는 “450bar까지 견딜 수 있는 수소튜브트레일러에 200bar로 압축한 수소를 채우고 다니는 것은 낭비”라며 “외국도 갈수록 저장 수준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정부 관련 조직 등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 IPO로 설비투자 자금 확보… 해외 진출도 잰걸음
일진하이솔루스의 전신은 한국복합재료연구소다. 압축천연가스(CNG) 버스용 연료탱크를 주로 만들었다. 2011년 일진그룹이 인수한 뒤 수소 연료탱크 사업을 확대해왔다. 아예 지난 4월 일진복합소재에서 수소(Hydrogen)와 솔루션(solution)을 조어한 일진하이솔루스로 이름까지 바꿨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사업을 더 확장하기 위해 다음달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장 예비심사는 ‘적격’ 판정을 받았다. 조달한 자금은 생산 설비를 늘리고 연구시설을 확장하는데 쓸 계획이다. 연말까지 완주 테크노밸리에 수소저장 솔루션 연구센터도 준공할 계획이다.
해외 진출도 첫발을 뗐다.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일진하이솔루스의 첫 해외영업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타입4 수소튜브트레일러의 경우 국내 인증은 물론, 국제 표준화 기구(ISO) 인증까지 받았다. 제품 수출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과 유럽, 호주 등에도 설비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안 대표는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며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서 해외 시장에서도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