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 졸업생 3명은 2019년에 삼성전자(005930)에 입사했다. 학부부터 석사, 박사과정까지 10년 넘게 원자력발전 분야를 공부해온 인재들이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이 쪼그라들자 전공과 다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 박사과정이 만들어진 1984년 이후 박사학위를 받은 이가 모두 일반 사기업에 취업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 학과장은 “한국을 넘어 전세계 원자력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우수 인재들이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진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교수로서 가슴 아팠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가운데 국내의 원전 인재들이 전공과 무관한 분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탈원전 기조로 원전 관련 기업이나 연구기관의 채용 규모가 줄면서 원자력 전공 학생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원자력공학 박사학위 소지자의 60%를 배출한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도 박사 출신들이 일반 민간 기업에 취업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건설중지된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전 3·4호기 예정지. /이진한 기자

6일 카이스트에 따르면 통상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 졸업생 3명 중 2명은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연구기관에 진출했다. 산업체에 진출하는 사례는 18%였다. 이마저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두산중공업 등 원전 관련 산업체에 취업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원전 관련 연구기관들의 채용이 줄면서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최성민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통상 학과 출신들은 원자력연구원 등 원전 유관 기관에 많이 진출하는데, 최근엔 자리가 없다보니 전공과 무관하게 일반 대기업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며 “10년 이상 전문 교육을 받고 역량을 키운 학생들이 비(非) 원전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2016년 819.5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599.5명 → 2018년 424명 → 2019년 413.5명 → 2020년 422명 등 채용 규모가 크게 줄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16년 112명에서 지난해 84명으로, 한전원자력연료는 2016년 110명에서 지난해 41명으로 정규직 채용 규모가 줄었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있는 학생들도 원자력 발전이 아닌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추세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는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산업이 흔들리자 최근에는 핵융합이나 양자공학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윤종일 학과장은 “과거에는 원자력 발전이 인기 전공이었으나, 최근 핵융합 또는 의료 방사선 분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과 내 원자력 발전 담당 교수가 9명, 의료 방사선 담당 교수가 2명인 점을 고려하면 교수 대비 학생의 선호 전공 비중이 역전된 셈이다.

원전 산업계는 이같은 상황이 길어지면서 차기 정부가 원전 정책을 바로 잡아도 당분간 인력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작성한 ’2019년 원자력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원자력 산업 관련 인력은 2016년 3만7232명에서 2019년 3만5469명으로 1763명(4.7%) 감소했다. 인재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2019년까지 3년간 원자력 관련 공기업에서 퇴사한 인원은 총 265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5%에 달하는 60명이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외에서 근무 중이다.

최성민 교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이어지면서 젊은 학생들이 원자력 산업의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면서 “여야를 떠나 차기 정권은 에너지 정책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지 말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