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000670)그룹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설립한 이후 3대째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공동 경영하고 있다. 장씨는 전자계열, 최씨는 고려아연(010130) 등 비전자계열을 주로 맡고 있다. 하지만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순환출자 고리 7개를 끊는 과정에서 지주사격인 영풍에 대한 장씨 일가의 지배력이 커졌다. 이에 시장에선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최씨 일가가 확보해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순환출자 고리 7개 끊으며 장씨 지배력 확대
영풍그룹은 2017년 7개였던 순환출자 고리를 2019년 7월에 모두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커졌다. ‘씨케이’가 키 역할을 했다. 씨케이는 지난 1분기말 기준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의 장남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대표와 차남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 딸 장혜선 씨가 지분 33.3%씩, 총 100%를 보유한 장씨 일가 소유 법인이다.
영풍그룹은 2017년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사인 테라닉스가 보유하고 있던 영풍 주식 2만5000주(1.36%)를 씨케이가 모두 인수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 고리 4개를 끊었다. 테라닉스는 또 시그네틱스 주식 53만6445주(0.63%)를 장내 매도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1개 더 끊었다.
2018년 영풍문고 → 영풍개발 → 영풍 → 영풍문고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도 영풍이 보유한 지분 24% 가운데 14.5%를 씨케이에 넘기고, 잔여지분 9.5%를 영풍문고가 자사주로 사들였다. 씨케이가 추가로 장 고문의 영풍문고 지분 18.5%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영풍문고는 지난해 문고사업부문 물적분할을 통해 존속회사 영풍문고홀딩스가 신설회사 영풍문고 지분 100%를 보유하는 방식이 됐다.
가장 마지막 과제는 서린상사 → 영풍 → 고려아연 →서린상사로 이어지는 고리였는데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이 서린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영풍 주식 19만820주를 1336억원에 직접 취득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 결과 영풍그룹의 지주사인 영풍에 대한 장씨 일가의 지배력은 현재 50%가 넘는다. 지난 1분기말 기준 장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 지분은 29.3%이고, 씨케이가 직접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9.2%다. 또 영풍개발이 영풍 지분 15.5%를 갖고 있는데, 씨케이 → 영풍문고홀딩스 → 영풍개발로 이어지는 구조다. 영풍 지분 1.6%를 보유한 에이치씨유는 장 고문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들 지분만 합해도 55.6%다. 반면 최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 지분은 13% 수준이다.
◇ 알짜 ‘고려아연’ 당장 계열분리는 어려울 듯
영풍은 100% 자회사 영풍전자를 비롯해 코리아써키트, 고려아연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인쇄회로기판(PCB) 업체 코리아써키트(007810)의 최대주주는 영풍으로 지난 1분기말 지분 39.8%를 보유하고 있다. 장세준 대표를 비롯한 특수관계인까지 합하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총 51.96%다. 코리아써키트는 다시 테라닉스(경성 PCB), 인터플렉스(연성 PCB), 시그네틱스(반도체 패키징)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영풍그룹의 알짜 회사인 고려아연 역시 1분기말 기준 영풍이 지분 27.5%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최씨 일가가 6.7%, 장씨 일가가 5.3%를 들고 있다. 고려아연은 코리아니켈, 알란텀, 서린상사, 서린정보기술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시장에선 영풍에 대한 장씨 일가의 지배력이 커진 상황에서 최씨 일가가 경영하고 있는 고려아연과 계열분리가 이뤄질지 주목하고 있다. 계열분리 방식 자체는 어렵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풍이 갖고 있는 고려아연 주식 518만6797주(27.5%)를 최씨 일가에 넘기면 되는 구조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최씨 일가는 2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고려아연이 영풍그룹 내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도 계열분리에 걸림돌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별도기준 매출 5조6521억원, 영업이익 8598억원을 냈다. 영풍은 별도기준 매출 1조2333억원, 영업이익 235억원이었고 코리아써키트는 매출 5629억원에 영업이익 465억원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20년 넘게 흑자를 내는 알짜 중의 알짜 기업”이라며 “계열분리 이야기가 자주 나오지만 장씨와 최씨가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계열분리가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영풍그룹 관계자도 “계열분리는 시장에서 나오는 추측일뿐 관련 논의는 전혀 없다”고 했다.
◇ 장세준 대표·최윤범 대표 등 3세 경영 속도
영풍그룹은 장 고문이 201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오너 3세대 경영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장 고문의 장남 장세준(47) 코리아써키트 대표는 영풍그룹의 전자 계열사 경영을 맡고 있다. 영동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장 대표는 2009년 시그네틱스 전무로 그룹 경영을 시작, 영풍전자 대표를 거쳐 지난해부터 코리아써키트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장 대표는 영풍 지분 16.9%를 들고 있는 최대 주주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최윤범(46) 고려아연 대표도 지난해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 오너 3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 대표는 창업주 최기호 회장의 장남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2007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과 페루 및 호주 현지법인 대표 등을 거쳤다. 이차전지 주요 소재인 전해 동박 생산공장을 울산에 짓고 있고, 호주에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를 하는 등 신사업 투자에도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