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대전 유성구 KT 대덕2연구센터에 있는 ‘비햅틱스’ 사무실. 직원이 나눠준 비햅틱스 조끼(무선 촉각 슈트)를 입고 양팔에는 토시를, 머리에는 헤드셋(HMD·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을 썼다. 양손에 권총 역할을 하는 컨트롤러를 쥐자 총싸움 준비가 끝났다. 그렇게 회사 직원과 가상현실(VR) 속 총싸움이 시작됐다. 일단 살고보자는 생각에 권총을 연달아 쐈다. 팔목에 진동이 ‘드르르’ 느껴졌다. 총 쏘는 맛이 팔목에 착착 감겼다. 초면임에도 나도 모르게 “죽어라” “악” 소리를 연신 외치기 시작했다. 머리에 총을 맞자 갑자기 머리에 진동이 왔다. 정신을 차리자 적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는데 이번엔 등에 ‘드르륵’ 진동이 오며 화면이 흔들렸다. 적이 뒤에서 날 겨눈 것.

곽기욱 비햅틱스 대표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 석사 / 사진 안상희 기자

비햅틱스는 청각, 시각 중심의 VR 시장에 촉각을 더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회사 이름도 인간의 촉감을 기계장치로 모방해 사람에게 전달하는 기술을 뜻하는 ‘햅틱(haptic)’에서 따왔다. 비햅틱스는 촉각과 콘텐츠를 연결하는 자체 기술을 개발해 조끼, 토시 등 관련 제품을 VR게임방·개인 등에게 파는 하드웨어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홀로게이트, 샌드박스 등 세계 유명 VR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비햅틱스의 햅틱 조끼 ‘테크슈트’를 사용한다. 비햅틱스는 기술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업 등에 파는 소프트웨어 사업도 한다.

카이스트(KAIST)에서 박사과정 중인 곽기욱(34) 대표가 햅틱 연구를 하다 2015년 창업했다. 곽 대표는 “박사과정 중 2013년 재미로 총싸움 게임을 만들었는데, 시청각이 몰입된 상황에서는 진동 수준의 햅틱 기술을 조금만 더해도 몰입감이 훨씬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콘텐츠를 연동하면 햅틱 기술을 충분히 상용화할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 회사의 테크슈트 앞뒤에는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40개의 모터가 달려있다. 게임당 촉각 패턴(무늬) 100~300개를 결합시킨다. 각 모터는 16단계의 세기로 조절되어 움직인다. 무게가 1.7㎏이지만 입었을 때 무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499달러(약 56만원)임에도 몰리는 주문에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곽 대표는 “VR 콘텐츠와 협업해 블루투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촉각 피드백을 주는 햅틱 조끼를 만드는 곳은 우리뿐”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은 고객이 주문해도 최소 6주를 기다려야 해, 하반기 생산 물량을 두 배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해 매출 16억원 중 90%는 해외에서 나왔다. 미국이 50%, 유럽이 25%다. 주목되는 점은 성장 속도다. 매출이 2018년 4억원에서 2019년 10억원으로 2.5배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도 60% 이상 성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사태로 VR게임방이 문을 많이 닫았을 텐데, 성장한 비결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햅틱 기기를 판매했다. 시장 성장이 기술 발전 속도를 쫓아오지 못하자 2018년 하반기부터 경쟁자가 알아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비햅틱스는 2019년부터 제품 개선과 콘텐츠 파트너(게임사와 협업) 확장에 주력했다. 세계 주요 VR게임방에서 비햅틱스 테크슈트 주문량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만 해도 VR게임방 매출이 대부분이었다. 해외에서는 VR게임방이 한국에서보다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VR게임방이 문을 닫자 아케이드 매출 비중은 5분의 1로 줄었다. 대신 개인 고객이 크게 늘었다.”

개인 고객의 매출 비중이 커진 이유는.

“2020년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게임 업체들과의 콘텐츠 협업이 늘어난 게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19년에는 테크슈트가 지원하는 게임이 5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7개로 급증했다. 올해 CES에서는 혁신상을 받고, 1분기까지 지원 게임이 61개로 늘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데, 적용되는 게임 수가 늘자 개인 고객이 늘었다. 게임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 촉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VR게임에서 뒤에서 누가 때리는 것은 청각과 시각으로는 표현해봐야 흔들리는 영상과 빨간 화면 정도다. 결국 VR과 메타버스를 완성하는 데 촉각, 햅틱 기술은 필수적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5가구 중 1가구는 VR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콘텐츠가 충분하면 취미에 499달러를 쓸 만하지 않겠는가. 테크슈트는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도 몰입감을 높여준다.”

수요가 많은데 왜 공급을 안 늘리나.

“하반기 내 생산량을 최소 두 배 늘릴 계획이다. 개인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유통사 요청도 많다. 여기에 VR게임방이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며 다시 문을 열자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은 코로나19 사태 회복 과정에서 각종 기기의 수요가 급증해 부품 수급을 크게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품질도 신경 써야 한다.”

안상희 기자가 비햅틱스 햅틱 장비를 착용한 후 개발자와 총싸움 VR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왼쪽 주황색 표시는 비햅틱스의 햅틱 관련 기기. 사진 비햅틱스

경쟁사와 차별점은.

“전 세계서 VR 콘텐츠와 협업한 햅틱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주는 조끼를 판매하는 곳이 비햅틱스뿐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시청각과의 시차 없이 연동하는 게 핵심이다. 서브팩(Subpac), 우저(Woojer)는 촉감 조끼를 만들지만 소리의 주파수나 크기에 진동을 연동한다. 테슬라슈트(Teslasuit)는 전기로 자극을 준다. 비햅틱스는 게임사와 협업한 덕에 사용자가 콘텐츠를 즐길 때 보다 더 맥락에 맞게 작동한다.”

햅틱 기술에 전기, 압력도 있는데 왜 진동을 활용했나.

“전기는 피부와 맞닿아야 하는데, 이 경우 옷을 벗고 기기를 장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압력을 느끼게 하려면 기기가 커진다. 햅틱스의 비전은 ‘햅틱을 당신의 일상 속으로’다. 여기에는 진동이 적합하다.”

촉각 기술은 왜 발달이 늦었을까.

“촉각과 달리 시각(jpg)과 청각(mp3)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규칙이 있다. 시각은 사진기·모니터 등, 청각은 스피커라는 출력 장치가 있다. 시각과 청각은 개발될 만한 게 다 최정상 수준에 달했다. 이제 미충족된 촉각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VR, 메타버스 시장이 커지면서 이를 완성시킬 촉각 기술 개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투자 유치 상황은.

“누적 투자는 30억원 정도다. 대만 HTC가 개발한 VR 기기 제조사 ‘바이브’, 아주IB투자, 기술보증기금 등이 주요 투자사다.”

앞으로 목표는.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신체부위에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와 햅틱 기기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때문에 미룬 PC방 렌털 사업을 재기하고자 한다. 매년 매출을 두 배 이상 늘리는 게 목표다. 올해도 무난히 이를 달성할 것이다.”

비햅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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