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가 국내외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 중에서 지배구조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지주를 정점으로 크게 조선, 정유화학, 건설기계 등의 사업을 거느리고 있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등의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이 30%를 넘어 안정적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 나서며 몸집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사업 부문별 중간지주 체제를 올해 안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정기선 부사장이 신사업을 중심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어, 장기적으로 ‘소유-경영 분리’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정몽준(오른쪽)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지난해 3월 20일 오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9주기 제사가 치러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옛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조선DB

◇ 정몽준·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통해 그룹 경영권 ‘탄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의 인적분할을 거쳐 2017년 현대중공업지주 출범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마무리했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순환출자 구조를 끊었고, 정몽준 이사장의 그룹 지배력은 커졌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분기말 기준 정몽준 이사장과 특수관계인은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을 총 34.3% 갖고 있다. 정 이사장이 26.6%로 가장 많고 정기선 부사장(5.26%), 아산사회복지재단(1.92%), 아산나눔재단(0.49%) 등이다.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한 자사주 10.5%까지 포함하면 지분율은 44.9%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산하에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오일뱅크,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로보틱스를 두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지분이 74.1%로 가장 높고 나머지 지분 역시 모두 30%가 넘는다. 오너일가 → 현대중공업지주 → 각 사업부문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탄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래픽=정다운

◇ 대우조선·두산인프라 인수로 중간지주사 체제 완성할까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를 품에 안고, ‘중간지주사’ 체제를 굳힐 전망이다. 우선 2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게 가장 큰 과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유럽연합(EU), 일본 경쟁당국 등이 이르면 이달 중으로 기업결합심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당국이 인수를 승인하면 한국조선해양이 KDB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현물로 출자받고, 이를 한국조선해양 상환전환우선주(RCPS) 911만8231주, 보통주 609만9569주와 교환한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진행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한국조선해양이 참여할 계획이다. 한국조선해양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지주를 대상으로 1조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지분 교환과 두차례 유상증자를 거치면 현대중공업지주가 한국조선해양의 최대주주, 산업은행이 2대 주주가 된다.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과 함께 기존 자회사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에너지솔루션 등을 포괄하는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도 속도를 내고 있는데, ‘현대제뉴인’이 한국조선해양처럼 건설기계 부문 중간지주사가 될 전망이다. 현대제뉴인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위해 지난 2월 만든 특수목적법이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제뉴인 지분은 현대중공업지주가 100%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공정위 등에 두산인프라코어 기업결합심사를 제출한 상태로 각국 경쟁당국의 심사를 거쳐 올해 안에 인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장에선 현대제뉴인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현대중공업지주가 보유한 현대건설기계 지분 33.1%를 넘겨받아 건설기계부문 중간지주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 → 현대제뉴인 → 현대건설기계·두산인프라코어로 이어지는 구조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건설기계 부문에 중간지주사를 세울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지금은 두사인프라코어 인수가 차질없이 마무리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지주와 사우디 아람코가 지난 3월 수소 및 암모니아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정기선 부사장(사진 왼쪽)과 아흐마드 알 사디(Ahmad A. Al-Sa’adi) 테크니컬 서비스 부문 수석부사장. /현대중공업지주 제공

◇ 정기선, AI·수소 신사업 속도… 현대중공업지주 外 지분 없는게 약점

대우조선해양 등의 인수가 마무리되면 정기선 부사장의 경영 참여도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직함과 함께 지난해부터 ‘미래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신사업 분야인 인공지능(AI), 로봇, 수소 등 프로젝트마다 정 부사장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신사업을 위한 실탄 마련에도 적극적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100% 자회사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지분 38%를 미국 대형 사모펀드 KKR에 약 6534억원 매각했다. 여기에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보유현금 1500억원을 배당받아, 총 8000억원을 마련했다. 또 하반기 현대중공업 기업공개(IPO)를 통해 약 20%의 신주를 발행, 1조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오일뱅크, 현대글로벌서비스 등 잠재 IPO 기업도 여럿이다.

정 부사장이 신사업에서 성과를 낸다면 승계 과정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정기선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외 다른 계열사는 지분이 거의 없다. 정기선 부사장은 2018년 KCC가 보유한 현대로보틱스(현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사들일 때 3040억원을 정몽준 이사장에게 증여받고, 나머지 500억원은 주식담보 대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배당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18년 설립 이후 주당 1만8500원의 현금배당을 해왔다. 지난해 5971억원의 영업손실이 났으나 배당은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 3년간 정 이사장은 2330억원, 정 부사장은 460억원가량의 배당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중간 배당도 실시한다.

정 이사장의 현대중공업지주 지분가치는 현재 1조5000억원이 넘어 나중에 정 부사장이 상속·증여을 받을 때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정 부사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나 신사업 투자를 늘리는 현대로보틱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승계가 급할 이유가 없고 현대중공업 인적·물적분할로 생긴 노사갈등도 아직 봉합이 안된 상태“라며 “정기선 부사장이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서 명분이나 정당성을 쌓은 뒤에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