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총 3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야 하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지난달말 전체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상속세를 내면서 주식담보 신용대출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이 이 부회장에게 대출을 내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음에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라희 여사 등 나머지 유족들은 금융권에서 1조원 규모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삼성전자 4202만주, 삼성물산(028260) 3267만주, 삼성SDS 711만주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공탁했다. 삼성 유족들은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5년간 6번에 걸쳐 분납하는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상속세를 나눠내려면 과세 당국에 지분 일부를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이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유족들은 계열사 지분을 공탁한 것 외에 이를 담보로 신용대출도 받았다. 홍 여사는 우리은행, 하나은행, 한국증권금융, 메리츠증권 등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1조원을 대출받았다.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물산 주식을 담보로 각각 3300억원, 3400억원을 빌렸다. 이 이사장은 삼성SDS 주식으로도 471억원을 대출받았다.
반면 이 부회장은 지분을 담보로 별도의 신용대출을 받지 않았다. 앞서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일가는 이번 상속세 납부를 위해 시중은행 두 곳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신용대출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된 대출 현황을 보면 이 은행들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으로 보인다. 은행 측이 유족의 대출을 진행하면서 이 부회장 대출 역시 취급 가능하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이 부회장이 이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대출 없이 일단 이번 상속세를 납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회장이 5년간 내야하는 상속세 총액은 2조9000억원이다. 회당 납부액은 약 4800억원이다. 은행이 약속한 신용대출은 이번 상속세 납부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내년에 신용대출이 필요할 경우 또다시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예금을 담보로, 또는 담보 없이 신용대출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금액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 담보 신용대출의 경우 예금의 90%까지 대출이 가능한데 현금이 있다면 굳이 이자를 내면서 신용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순수하게 개인 신용으로 대출을 받았다면 주식 등 담보 없이 거액을 내주긴 힘들어 (만약 이용했어도) 비교적 소액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여사 등 나머지 유족들이 선택한 우리은행, 하나은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일가가 받으려는 신용대출은 사상 최대 규모인만큼 이를 유치하기 위한 은행권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삼성의 주채무계열 은행인 우리은행에선 홍 여사만 대출을 받았고,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은 하나은행을 선택했다. 우리은행에서는 1900억원을, 하나은행에선 4771억원을 삼성 일가에 지원했다. 금리는 우리은행이 연 2.67%, 하나은행이 연 2.77%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나은행 측은 “주채무계열 은행은 아니지만 삼성과 활발하게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삼성은 대부분의 시중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하나은행에 대출 금액이 몰린 것은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의 개인 금융거래가 하나은행에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