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일가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보유 주식 가운데 삼성생명(032830) 지분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에게 몰아주고 나머지는 법정비율대로 상속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 부회장에게 삼성생명 지분을 몰아줘 삼성그룹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삼성전자 주식은 유족에게 골고루 배분한 뒤 배당을 통해 상속세를 마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생명은 30일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이재용 2075만9591주, 이부진 1383만9726주, 이서현 691만9863주씩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보유했던 삼성생명 지분 20.76% 가운데 절반인 10.38% 가량을 상속받았다.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기존 0.06%에서 10.44%로 올랐다. 개인 주주 중에서는 가장 많고, 전체로 보면 삼성물산(028260)에 이어 2대 주주다.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은 1383만9726주를 상속받아 지분율 6.92%,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691만9863주를 물려받아 3.46%를 확보하게 됐다. 홍라희 여사는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지 않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산 규모. / 김란희 기자

이는 이 부회장의 경영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형태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을 경영하는 체제지만,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이 적어 그룹 장악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대 회장들도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지배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도 같은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도 삼성생명 지분을 총 10% 확보했다. 세 남매가 삼성생명 지분 20%를 확보하면서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재계의 관심을 모았던 삼성전자 지분은 법정 상속 비율대로 배분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홍라희 7709만1066주, 이재용 5539만4046주, 이부진 5539만4044주, 이서현 5539만4044주씩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홍 여사가 9분의 3, 세 남매가 각각 9분의 2인 법정 상속비율과 일치한다. 이번 상속으로 삼성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홍 여사가 0.91%에서 2.30%로, 이 부회장이 0.70%에서 1.63%로, 이부진 사장이 0%에서 0.93%로, 이서현 이사장이 0%에서 0.93%로 변경됐다.

당초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이 전부 상속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유족들이 삼성전자 지분을 골고루 상속받은 것은 상속세 마련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달 역대 최대 규모인 13조원을 배당했다. 최대 주주인 총수 일가가 받은 배당금만 1조 342억원에 달한다. 삼성 일가는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5년간 분납하기로 결정했는데, 삼성전자 배당금이 주요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이 모두 물려받을 경우 상속세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028260)삼성에스디에스(018260) 지분도 모두 법정비율대로 상속했다. 각사 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했던 삼성물산 지분은 이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이 각 120만주를 상속했다. 홍라희 여사는 180만주를 상속받았다. 삼성SDS는 이 부회장이 2158주, 이부진과 이서현이 각각 2155주, 홍 여사는 3233주를 받았다. 상속 후 삼성물산 지분율은 이재용 18.1%, 이부진·이서현 6.24%다. 삼성SDS는 이재용 9.20%, 이부진·이서현 3.90%다.

이 전 회장의 주식 상속 자산은 삼성전자 보통주(4.18%)와 우선주(0.0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