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일가가 28일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의 유산 상속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 전 회장이 보유한 주식 배분 방식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오늘 발표된 내용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주식 배분은) 유족들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만 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지분이 배분될지 주목하고 있다. 삼성 일가가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미술품 기부와 사회 환원 등을 결정했기 때문에 주식 상속도 경영권을 물려 받은 이 부회장에게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전 회장 보유 지분은 삼성전자 보통주(4.18%)와 우선주(0.0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028260)(2.88%), 삼성에스디에스(018260)(0.01%) 등이다. 고인이 유서를 남기지 않을 경우, 법정 상속 비율은 고인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가 9분의 3, 이 부회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각각 9분 2씩 상속받아야 한다. 이 경우 가족 지분을 통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는 없다.
재계에서는 삼성 일가가 이 부회장에게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식 배분에 합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7.33%(최대주주)를 보유하고 있지만,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각각 0.06%, 0.7%에 불과하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형태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보유 지분이 적어 그룹 지배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또 책임경영 측면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재계에서는 삼성 일가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상속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최대한 몰아주고 나머지 유산을 가족들이 배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부회장이 이런 방식으로 주식을 상속 받으면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팔아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삼성 일가가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야하는 만큼 배당 여력이 큰 삼성전자 주식을 이 부회장이 모두 차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역대 최대 규모인 13조원을 배당했다. 최대 주주인 총수 일가가 받은 배당금만 1조 342억원에 달한다. 삼성 일가는 상속세를 5년간 분납하기로 결정했는데, 삼성전자 배당금이 주요 상속세 재원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삼성전자 지분은 유족들이 상속세 규모에 따라 나눠서 보유할 가능성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선대에서도 삼성생명 지분을 통해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했던 만큼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대부분 상속하고 삼성전자는 유족이 골고루 나눠 보유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고 했다.
삼성 일가도 주식 배분 방안을 끝까지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 일가가 지난 26일 금융당국에 삼성생명 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서를 냈다. 개인별로 공유지분을 특정하지 않았다. 상속인들은 원래 각자 받을 주식 몫을 구체적으로 나눈 뒤 대주주 변경 승인을 신청하려 했으나, 분할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공유주주로서 대주주 승인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일가는 상속세 신고 납부 시한인 오는 30일 전에는 가급적 삼성생명 등 주식의 지분율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