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 '그랜저'는 1986년 처음 출시된 이후 약 40년간 한국 고급 세단의 역사를 이끌어 온 모델이다. 과거 성공의 상징에서 대중성을 확대해 국산 프리미엄 패밀리카이자 비즈니스 세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 그랜저가 최근 '더 뉴 그랜저'로 부분변경됐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를 최초로 탑재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으로 바뀐 것이 핵심이다. 지난 28일 서울~춘천을 오가며 새로운 그랜저를 직접 시승해 봤다.
차 크기는 길이 5050㎜, 너비 1880㎜, 높이 1460㎜로 이전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전면부의 경우, 이전 모델은 메인 그릴과 하부 인테이크 그릴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새로운 모델은 크고 넓은 그릴 하나로 합쳐졌다. 슬림한 선 모양의 헤드램프는 그대로다. 옆에서 바라보면 앞 범퍼 끝부터 앞바퀴 중심축까지를 나타내는 프런트 오버행이 15㎜ 길어졌다. 샤크 노즈(상어 코) 형상을 강조한 것으로, 한층 날렵한 인상을 준다.
1열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먼저 스티어링 휠이 동그란 형태에서 얇고 작은 더블 D컷 스타일로 바뀌었다. 보다 스포티한 느낌이다. 계기판 대신 얇은 직사각형 상자 모양의 9.9인치 디스플레이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디스플레이엔 연비와 재생 중인 음악, 주행 가능 거리, 주행등 상태 등이 표시된다.
대시보드 가운데엔 17인치에 달하는 대형 센터 디스플레이가 들어왔다. 대부분의 기능은 이 디스플레이로 조작해야 한다. 통풍과 열선, 냉난방 전원, 온도 조절, 비상등과 같은 최소한의 물리 버튼은 남아있다. 스티어링 휠에 붙어 있는 변속 레버는 앞뒤로 돌리는 방식에서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방향지시등과 와이퍼도 통합됐다.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나뭇결 무늬를 살린 소재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고, 대시보드는 플라스틱이지만 가죽과 비슷한 촉감이 났다. 문에는 소파처럼 올록볼록한 '카우치 패턴'이 적용됐는데, 가죽이 아니고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이라 다소 아쉬웠다. 문 손잡이도 지나치게 깔끔함을 추구한 탓인지 고급 세단이라기엔 다소 밋밋한 편이었다. 스마트 비전 루프가 적용돼 지붕의 투명도를 조정할 수 있다.
센터 디스플레이를 보면, 플레오스 커넥트 덕에 다양한 앱이 설치돼 있었다. 현재 플레오스 앱 마켓엔 총 11개의 앱이 출시돼 있는데, 현대차는 올해 내로 두 자릿수 이상의 앱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디스플레이가 큰 만큼, 주행 중에도 화면 분할을 통해 여러 정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편리했다. 센터 콘솔 무선 충전기는 스마트폰 두 대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인 '글레오 AI'도 이번 그랜저가 내세우는 부분이다. 다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글레오"라고 부르면 "저 여기 있어요"라고 응답한다. 이때 단순한 차량 제어부터, 지식 검색과 감성적 대화까지 가능하다. 다만 몇 번씩 불러야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열어줘"라고 하니 뒷좌석 창문이 열렸다. 창문을 다시 닫아달라고 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더 뉴 그랜저 가격을 알려줘"라고 하니 이전 모델인 2026년형 그랜저의 가격을 알려줬다. 현대차는 향후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글레오의 기능을 향상할 예정이다.
운전 성능은 대체로 양호했다. 이날 탑승한 차량은 가솔린 2.5 트림이었다. 페달을 밟는 느낌은 가벼운 편이었고, 노면 정보는 크게 전달되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분변경 하면서 서스펜션이 많이 개선됐다"며 "방지턱을 지난 뒤 움직임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약간 걸리는 점을 잡아냈다"고 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편안함을 유지하되, 세련되고 단정한 움직임을 구현했다"고 덧붙였다. 다소 빠르게 급격한 커브길에 진입했는데, 잘 빠져나왔다.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을 땐 한 번에 속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끊어서 올라갔다. 다만 편안함에 중점을 둔 차량인 만큼, 큰 단점이라 보긴 어렵겠다. 가솔린 2.5 트림의 최고 출력은 198마력, 초반 가속력을 좌우하는 토크는 최대 25.3kgf·m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220㎞,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9.3초다.
계기판이 없다 보니 rpm(엔진의 분당 회전 수)이 센터 디스플레이 구석에 표시되는데, 전통적인 다이얼 모양이 아닌 작은 숫자로만 표기돼 차량의 능력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안정적이었다. 기능 버튼이 많지 않고 아이콘 모양이 직관적이라 조작이 쉬웠다. SCC를 켜놓고 다른 쪽을 잠깐이라도 바라보면 전방 주시 경고음이 나온다. 깜빡이를 켰을 때 차선을 바꿔주진 않는다. 직접 차선을 변경하느라 스티어링 휠을 조작했는데도 SCC 기능이 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스티어링 휠에서 30초 정도는 손을 떼는 것도 가능하다.
복합연비는 가솔린 2.5 트림의 경우 1L당 11.6㎞다. 아직 인증이 완료되지 않아 연비가 공개되지 않은 하이브리드 트림을 제외하면 전 트림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솔린 3.5 트림은 10.0㎞/L, 3.5 LPG 트림은 7.7㎞/L다.
2열은 준대형 세단답게 넉넉했다. 신장 170㎝ 성인이 앉았을 때 앞좌석과 무릎 사이 공간이 여유로운 편이었다. 엉덩이 부분을 앞으로 빼 등받이 각도를 보다 편하게 조절할 수도 있었다. 하이브리드 트림의 경우 동급 하이브리드 세단 최초로 2열에 리클라이닝 시트와 통풍 시트가 적용된다.
더 뉴 그랜저의 개별소비세 3.5%를 포함한 가격은 ▲가솔린 2.5 4185만원 ▲가솔린 3.5 4429만원 ▲하이브리드 4864만원 ▲LPG 4331만원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