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이 이르면 이달 중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어떤 기조로 그룹 수뇌부를 재구성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SK(034730)그룹 등은 젊은 인력을 대거 사장으로 발탁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상대적으로 안정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미국의 관세 대응과 신기술 개발 등에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도 있어 변화의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의선 회장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사장단과 후속 임원 인사 등을 위한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사장단 인사를 11월 15일에 낸 바 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시기에 사장단 인사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예상보다 1~2주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지난달 30일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 SK그룹은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그러면서 1970년대생 임원 5명을 사장으로 선임해 젊은 사장단 진용을 구축했다.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총괄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사업지원실로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을 보좌하는 '2인자' 역할을 해 왔던 정현호 사업지원실장(부회장)을 용퇴시키고 그 자리에 박학규 사업지원실장(사장)을 발탁했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이 같은 대대적인 변화보다는 보완과 조정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지난해 인사에서 장재훈 당시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주요 직무 담당 및 계열사 사장들도 대거 새 얼굴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고율 관세 등 여러 대외 악재에 대한 대응과 부진한 실적 등은 올해 사장단 인사의 변수로 거론된다.
현대차그룹 사장단에서 거취에 가장 많은 시선이 쏠리는 인물은 대관(對官) 업무를 총괄하는 성 김 사장과 완성차 판매를 이끌고 있는 호세 무뇨스 사장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인사에서 나란히 현대차 최초 외국인 사장으로 발탁돼 재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최근 그룹 내외부에서 두 사람의 성과에 대해 '물음표'를 붙이는 평가도 나오는 상황이다.
성 김 사장은 올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대한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미국 외교관 출신으로 현지 정·관계에 두터운 인맥을 가진 성 김 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대규모 대미 투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음에도 정작 관세율을 낮추는 등의 실익은 얻지 못했다.
무뇨스 사장의 경우 미국이 지난 4월부터 수입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 중인 상황에서도 현대차가 일단 판매에 선방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했고, 전기차 판매 감소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2조537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2% 감소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리더십 체계를 바꾸거나 새 얼굴을 보강하는 내용의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김용화 전 사장이 지난 2023년 말 퇴임한 후 R&D 분야에 단일 컨트롤타워는 없는 상태다. 현재 양산차 개발은 양희원 R&D 본부장(사장)이,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분야는 송창현 포티투닷 대표 겸 AVP본부장(사장)이 각각 나눠 맡는 '투톱 체제'로 가동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자율주행 기술 등에서 경쟁사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데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의 신사업 추진도 속도를 내야 할 상황이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 지난 8월 자리에서 물러난 신재원 전 미래항공모빌리티 담당 사장의 빈 자리도 채워야 한다.
현대차 외에 주요 계열사에서 지난해 선임된 사장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최준영 기아(000270) 사장과 이규복 현대글로비스(086280) 사장,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등은 지난해 임명돼 아직 재임 기간이 짧다. 이 밖에 부사장 직급인 이한우 현대건설(000720) 대표와 백철승 현대트랜시스 대표, 오준동 현대케피코 대표도 지난해 발탁된 인물들이다.
다만 일부 계열사 대표나 사장들은 연임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지난 2월 세종-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를 시작으로 3월 경기 평택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추락사고, 충남 아산 오피스텔 신축공사 현장 추락사고 등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그룹이 주 사장에게 잇따른 안전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수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현대차그룹 사장단 중 가장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인물은 지난 2020년 3월 취임한 이용배 현대로템(064350) 사장이다. 현대로템은 이 사장 취임 후 줄곧 실적 개선 흐름을 유지해 왔다. 올 3분기 매출액은 1조61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1% 늘었고, 영업이익은 102.1% 급증한 2777억원을 기록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앞서 지난달 29일 그룹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신임 대표로 1973년생 김정아 부사장을 승진 임명한 바 있다. 김 사장은 대부분 60세를 넘긴 다른 사장들에 비해 훨씬 젊은 편이다. 이를 두고 그룹 안팎에서는 다양한 시장 변수와 기술 발전 속도 등에 대비해 젊은 리더를 발탁하기를 원하는 정의선 회장의 속내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