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중국 전기차 업체의 공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줄어들자, 결국 합병을 결정했다. 혼다와 닛산은 합병으로 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전기차 등 핵심 미래 기술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많아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 등 국내 업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NHK 등 주요 일본 매체에 따르면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과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합병을 위한 협의를 시작해 오는 2026년 8월까지 통합 지주사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혼다와 닛산 플랫폼을 표준화하고 연구개발(R&D)과 판매망 등도 통합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합병을 통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에서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산 시설과 조직, 기능을 합리화하면서 축적한 비용은 주로 신기술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점유율 높이는 中 전기차… 미래 투자 부족했던 日 추락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전기차에는 오랜 기간 투자를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전기차 성장이 둔화된 상황이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비중은 2018년 2%에서 지난해 18%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에서 앞서간 여러 경쟁사에 밀려 최근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줄고 있다.
과거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석권했던 대표적인 지역은 동남아시아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동남아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늘면서 일본 업체의 점유율은 줄고 있다.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의 점유율은 2021년 73%에서 2022년 68.7%로 줄었다.
일본 업체가 고전하는 사이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주요 7개국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2021년 7%에서 지난해 52%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021년부터 유럽에서 승용차를 판매하고 있는 BYD는 헝가리에 공장을 착공한 데 이어, 튀르키예에도 생산 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고율의 관세를 피하고 유럽 시장에서 판매량을 확대하기 위해 현지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BYD는 브라질, 멕시코에도 공장을 세우기로 하는 등 중남미 시장 공략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 현대차·기아 미칠 영향은 제한적
혼다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398만대, 닛산은 337만대를 각각 판매했다. 두 회사의 합산 판매량은 735만대로 현재 세계 3위 자동차그룹인 현대차·기아의 판매대수(730만대)를 넘어선다. 합병이 성사되면 생산, 판매, R&D 등 여러 기능이 통합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신기술 등에 대한 투자 규모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완성차 업계에서는 혼다와 닛산의 합병이 주요 경쟁사인 현대차·기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 회사 모두 전기차 분야에서 기술 수준과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일본차가 강점을 가진 하이브리드차 분야에서도 현대차·기아의 경쟁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은 204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규모로 투자를 해 왔다. 현대차는 현재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등 전용 전기차를 팔고 있으며, 주력 내연기관차에도 전기차 모델을 추가하고 있다. 기아 역시 전용 전기차 모델인 EV 시리즈를 판매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월부터 미국에 대규모 친환경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를 가동하는 등 생산력에서도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