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들이 세계 최대 가전·정보통신(IT) 박람회 CES에 대한 비중을 낮추고 있다. 앞다퉈 신기술을 공개하던 예년과 달리 내년에는 부스 규모를 줄이고 판매 창구로 활용하려는 모습이다.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지체) 여파로 앞선 CES에서 공개했던 신기술을 양산하지 못한 데다, 판매량 감소에 따른 고강도 구조조정 등 업계에 불어닥친 한파가 원인으로 꼽힌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내년 1월 7~10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CES 2025에 부스를 꾸리는 완성차 업체는 독일의 폭스바겐과 BMW, 일본의 혼다·미쓰비시·스즈키 등 5개다. 올해 1월 열렸던 CES 2024와 비교하면 업체 수(7개)는 비슷하지만, 내년에 참가하는 업체는 대규모 부스에서 신기술을 공개하기보다는 작은 규모의 부스를 꾸리거나 전시관 형태로 운영하며 영업에 더 중점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CES는 지난 몇 년간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로 불릴 정도로 완성차 업체들이 참가 규모를 키워왔다. 올해 초에는 현대차(005380), 기아(000270), 벤츠, BMW, 폭스바겐, 혼다, 빈패스트 등 7개 업체가 참가해 신기술을 선보였다. 현대차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Software-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의 비중이 높은 차)과 수소에 집중했고, 기아는 이동수단의 혁신을 이끌 미래 핵심사업이라며 목적기반차량(PBV·Purpose-Built Vehicle)을 제시했다. 독일 회사들은 챗 GPT에 기반한 인공지능(AI)을 차량에 적용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내년 CES에서는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이 올해 CES보다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내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고 포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미국 업체도 2년 연속 불참한다. CES 2020에서 친환경 미래형 도시 ‘우븐시티’ 건설계획을 발표하며 CES의 모빌리티 분야를 주도했던 도요타는 내년 CES에 복귀 하지만, 신제품·신기술 공개보다는 북미 법인 이름으로 미팅 공간만 운영해 판매에 주력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벤츠도 과거보다 CES 비중을 낮췄다. 미국 법인 명의로 부스 예약은 돼 있지만, 본사 차원의 참가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벤츠 관계자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소개하는데 여전히 흥미가 있지만, 본사에서는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다른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벤츠는 매해 CES에 참가했고 올해 초 CES 2024에서 자체 개발한 차량용 운영체제에 지능형 서비스를 통합한 MBUX와 1200㎞를 주행하는 전기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이 CES에 대한 비중을 낮추는 이유로 생각보다 더딘 전동화(전기로 움직임)를 꼽는다. 완성차 업체들에 CES는 전동화를 목표로 새로운 기술을 뽐내는 자리였다. 하지만 전동화가 늦은 속도로 진행되면서 공개할 신기술이 많지 않아진 것이다.
또 경기 침체와 중국발 전기차 공세로 시작된 미국과 유럽 업체의 고강도 구조조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CES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인데, 미래는 장사가 잘될 때 하는 이야기”라며 “수익률이 수십%씩 떨어지는 상황에서 미래를 이야기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