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황학동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전기차 차주 김가람(가명)씨는 이달 초부터 집 근처에 월(月)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을 찾고 있다. 지난달 1일 인천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자 관리사무소가 주차 금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2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에는 기계식 주차타워 외에 주차 공간이 없다.

김씨는 “매달 주차비로 5만원 씩 내고 있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사전에 어떤 설명이나 대안도 없이 ‘전기차 주차 금지’ 안내문을 붙여놨다”며 “오피스텔에 전기차 차주가 많지 않아 적극적으로 항의하기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라는 이유로 사는 곳에 주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중구 황학동 한 오피스텔 기계식 주차타워에 붙은 전기차 출입금지 안내문. /독자 제공

전기차 화재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전기차 차주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피스텔, 아파트는 물론 상가, 병원 등에서 전기차 입차를 거부당하거나 충전 시설을 이용하지 못해 헛걸음하는 차주도 있다.

다른 전기차 차주 정지원(가명)씨는 지난 1일 경기 시흥시 다이빙풀을 찾았다가 지하 주차장 출입 불가 안내를 받았다. 이 건물은 지난달 말부터 전기차 주차를 금지하기로 했다. 주차 금지가 적힌 현수막에는 지상 주차장을 이용하라고 안내가 됐지만, 건물에서 운영하는 지상 주차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이 입주한 상가 건물도 전기차 입차를 금지하는 경우가 있다. 의료기관 특성상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많아 화재가 발생하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노원 을지병원, 대구 푸른병원 등 주요 지역 병원 등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상가건물에 붙은 '전기차 주차금지' 안내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달 초 인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본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진입을 금지했다는 사례가 꾸준히 올라왔다. 일부 아파트 단지는 입주민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내연기관차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사실상 무의미한 절차라는 지적이 나왔다.

갈등이 빈번해지면서 일부 전기차 차주는 지방자치단체나 국회에 민원을 넣거나 법적 대응을 고민하고 있다. 전기차 커뮤니티에서는 전기차 주차나 출입 금지에 대응하는 내용증명 양식까지 공유되고 있다. 법적 근거 없이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주차뿐 아니라 충전 시설을 이용하는 데 제약도 많아졌다. 서울시 등이 지하에 있는 충전 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는 방안을 권고하면서 충전 시설 전원을 꺼버리는 등 사용을 임시 중단한 건물이 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청사 지하 주차장의 충전 시설을 폐쇄하거나 이전을 추진 중이다.

지자체별로 전기차 화재 안전 대책이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이달 중 전기차 관련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각 부처에서 논의한 전기차 충전 시설 안전, 배터리 안전 기준, 공동주택 소방 시설, 배터리 기술 연구개발(R&D) 등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