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공급부터 전기차 생산까지 국내 전기차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계가 자생력을 키우지 않으면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영향력이 가장 센 분야는 배터리 공급이다. 전기차 생산이 늘면서 배터리 공급이 부족한 탓이다. 장재훈 현대차(005380) 사장은 “지금 전기차 경쟁은 배터리 확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현대차 제공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중국산 전기차용 배터리 수입액은 49억7000만달러(약 6조7700억원)로, 전년 대비 105% 증가했다. 이미 지난 8월에 작년 한 해 수입액을 넘겼다.

중국산 배터리 수입액이 늘어난 이유는 중국이 많이 만드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각광을 받은 측면이 크다. LFP 배터리는 기존 리튬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는 짧지만, 가격이 30% 이상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가격이 비싼 전기차의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 주는 셈이다.

수출용 전기 트럭 마이티 일렉트릭에 장착돼 있는 CATL 배터리. /현대차 뉴질랜드 제공

국산 전기차 가운데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제품은 현대차(005380) 코나 일렉트릭, 기아(000270) 레이 EV, 니로 EV, KG모빌리티(003620) 토레스 EVX, 코란도 e-모션 등이다. 르노코리아자동차의 하이브리드차 XM3 E-테크 하이브리드도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다.

현대차는 회사 최초의 수출 상용차 마이티 일렉트릭에 중국 CATL 배터리를 장착한다. 1톤(t)급 소형 트럭인 현대 포터Ⅱ 일렉트릭, 기아 봉고Ⅲ EV에도 중국산 배터리를 쓴다.

완성차 생산 영역에서도 중국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생산·개발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견 완성차 업체가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KG모빌리티는 중국 BYD(비야디)와 합작해 배터리셀 공장을 건설하고, 하이브리드 동력계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KG모빌리티의 자체 개발 능력이 떨어져 중국과 기술 제휴를 하는 것이다.

중국 항저우만 공장에서 폴스타4가 생산되고 있다. /르노코리아자동차 제공

르노코리아는 부산공장에서 2025년 하반기부터 스웨덴 전기차 폴스타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폴스타4를 생산한다. 폴스타는 르노코리아의 2대 주주(지분율 34%)인 지리자동차가 볼보차와 합작해 만든 기업이다. 르노코리아는 지리자동차가 볼보차와 함께 개발한 CMA 플랫폼에 기반한 전동화(전기로 움직이는 것) 신차 생산도 내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 전기 상용차 시장은 중국산이 득세 중이다. 올해 들어 9월까지 판매된 전기 버스 1514대 중 675대가 중국산으로, 시장 점유율은 44.6%에 달한다. 국내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 화물차 26종 중 중국산은 14종에 달한다. 중국산 전기 화물차는 올들어 7월까지 1358대가 판매됐는데,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20%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전기차 산업이 향후 중국 기업에 잠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와 같은 대기업은 생존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