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시장에 중국산 배터리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중국산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지만, 장착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산(産)’이라는 딱지를 떼고, 미국 인플레이션법(IRA)을 우회하기 위해 한국에 생산 거점을 두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 코나 일렉트릭, 기아(000270) 니로 EV, 레이 EV(출시 예정), KG모빌리티(003620) EVX 등은 모두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했다. 테슬라 모델Y RWD(뒷바퀴 굴림), 메르세데스-벤츠 EQE 등에도 중국산 배터리가 장착돼 있다.
보통은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하지만, 최근에는 한 단계 아래로 평가받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장착도 늘고 있다.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기아 레이 EV와 테슬라 모델Y RWD, KG모빌리티 토레스 EVX에는 중국 CATL과 BYD(비야디)의 LFP 배터리가 각각 들어간다. 내년 초 출시하는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가칭)에도 CATL LFP 배터리가 장착될 예정이다.
LFP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은 게 단점이다. 그러나 구조가 안정적이어서 삼원계에 비해 화재 가능성이 작고, 흔한 소재를 원료로 해 가격도 저렴하다. 최근에는 에너지 밀도를 높인 LFP배터리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밀도가 높으면 전기차 주행거리가 길어진다.
중국 배터리 회사들은 한국에서 생산하기 위한 준비에도 착수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중국·한국 기업들은 총 5조1000억원(약 40억달러) 규모의 합작 투자로 한국 내 5개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BYD는 KG모빌리티와 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운다. 공장 규모와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5년 1월 양산을 목표로 한다. 닝보론베이뉴에너지테크놀로지는 전북 새만금에 연산 8만t(톤) 규모의 삼원계 전구체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은 IRA에서 요구하는 핵심 광물 관련 사항을 충족한다”며 “유럽과 미국 시장에 수출할 때는 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전구체 기업 거린메이는 지난 3월 SK온과 배터리 소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세계 1위 코발트 생산업체 화유코발트는 올해 초 포스코퓨처엠(003670) 등과 전구체,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을 위한 합작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전구체는 리튬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활물질의 원료다. 전구체의 성능이 전체 배터리 성능을 좌우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중국 업체들은 이 전구체를 한국에서 대량 생산해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한국 배터리 회사에 공급하고, 이렇게 생산된 배터리는 테슬라, GM, 현대차, 폭스바겐 등이 만드는 전기차에 장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