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생산과 판매 증대를 위해 배터리 업계와 전방위 협력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체는 물론, 중국 배터리 업체 CATL과도 접점을 늘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005380)기아(000270), 현대모비스(012330)는 최근 SK온과 미국 배터리 생산 및 공급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현대차그룹과 SK온이 북미 배터리 공급 협력을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MOU)의 후속 조치다.

현대차그룹과 SK온의 배터리 공장은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건립된다. 연간 35GWh(기가와트시) 규모로, 당초 알려졌던 것(20~25GWh)보다 확대됐다. 전기차 약 30만대에 장착할 수 있는 분량이다. 총 투자 금액은 6조5000억원(50억달러)으로 투자금은 양측이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그래픽=정서희

이 공장은 기아 조지아 공장(189㎞),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04㎞), 2024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460㎞)와 멀지 않아 공급망 관리에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미국 내 합작 공장 건립에도 속도를 낸다. 생산능력은 SK온과 만든 합작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된다. 이 공장을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은 다음달 초 이사회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에 합작법인 HLI그린파워를 세우기도 했다. 올 상반기에 공장을 완성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베터리셀 생산에 들어간다. 전체 투자금은 11억달러(약 1조4700억원)로, 출자 비율은 LG에너지솔루션 50%, 현대모비스 25%, 현대차 15%, 기아 10%다.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전경. /현대차 제공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공급망 확보를 위해 중국 CATL과도 접점을 늘리고 있다. 지난달 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쩡위친(曾毓群) CATL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을 만나 협력 강화를 논의했고, 이달에는 실무급 임원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수천억원 규모의 CATL 배터리를 공급 받았는데,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EV), 기아 레이(2세대) EV 등에 CATL 배터리를 쓰면서 올해는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레이 EV에 들어가는 CATL 배터리는 리튬인산철배터리(LFP)로, 경차 특성을 고려해 배터리 부피를 줄이는 ‘셀투팩(cell to pack)’ 기술이 적용됐다.

현대차그룹은 CATL과 미국 합작 공장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우회하기 위해 미국 포드와 미국에 공장을 만든 데 따른 것이다. 현대차도 이런 방식의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현대차 제공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 3월 말 열린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지금 전기차 경쟁은 배터리 확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배터리라고 해서 기술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산 배터리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터리를 구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 배터리 회사를 가릴 상황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전기차 시장에도 도전하고 있어 CATL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는 이유는 향후 전기차 산업 환경이 ‘보호주의’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IRA가 대표적이고, 유럽 역시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원료의 유럽 외 의존도를 낮추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도입하려고 한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지속가능한 사업을 위해 배터리 조달을 다양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출용 전기 트럭 마이티 일렉트릭에 장착돼 있는 CATL 배터리. /현대차 뉴질랜드 제공

현대차그룹은 유럽 시장의 경우 현지 공장과 가까운 LG에너지솔루션, 동아시아는 중국이 중심이 되는 CATL, 동남아시아는 LG에너지솔루션 합작사인 HLI그린파워를 활용한다. 여기에 국내와 북미는 SK온,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중국 시장에 각각 특화된 현지 전략형 전기차를 확대하고 보조금 규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동아시아와 기타 지역별 거점에는 안전성과 생산원가 등을 따져 다양한 배터리를 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