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가 영국 상업용 전기차 기업 어라이벌(Arrival)에 투자했다가 1000억원의 손해를 봤다.

17일 현대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보유한 어라이벌 지분 1.99%에 대한 장부가액을 기존 1036억2600만원에서 26억5600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현대차는 “회수 가능 금액이 장부금액에 미달해 손상차손 1009억7000만원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손상차손이란 실제 가치가 장부 가치보다 현저히 떨어졌을 때 재무제표에 손실로 반영하는 회계처리를 말한다. 어라이벌의 기업 가치가 급락해 현대차가 보유 중인 지분(1.99%) 가치도 급락한 영향이다. 어라이벌은 상장 2년 만에 나스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여 전망도 비관적이다.

어라이벌의 전기밴. /어라이벌 제공

현대차는 2019년 12월 어라이벌에 투자했다. 당시 8000만유로(당시 약 1031억600만원)를 들여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기아(000270)도 함께 2000만유로(당시 약 258억원)를 투자했다.

어라이벌은 2015년에 창업한 밴, 버스 등 상용 전기차 개발 기업이다. 본사 주소지는 룩셈부르크인데,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현대차는 어라이벌에 투자한 지 한 달여 뒤인 이듬해 1월 알버트 비어만 당시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 사장과 데니스 스베르드로프 어라이벌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한 가운데, ‘투자 및 전기차 공동개발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유럽을 겨냥해 소형 상용 전기차 개발을 위해 상호 협력한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차는 어라이벌 이사회에도 참여 중인데, 2021년 7월부터 황윤성 현대자동차 오픈이노베이션투자실장(상무)이 어라이벌 이사회의 내부 위원회인 지명위원회와 기업 지배구조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어라이벌은 ‘마이크로 팩토리’를 혁신으로 제시하며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받았다. 대규모 공장이 아닌 작고 고도화된 작은 여러 로봇 공장으로 생산 혁신을 이루겠다고 했다. 전 세계 100개의 마이크로팩토리에서 연간 1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목표였다. 현대차가 작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총 173만대였다.

2020년 1월 16일 데니스 스베르드로프(왼쪽) 당시 어라이벌 CEO와 알버트 비어만(오른쪽) 당시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 사장이 ‘투자 및 전기차 공동개발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어라이벌은 장밋빛 전망을 바탕으로 2020년에 현대차뿐 아니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으로부터 1억1800만달러(당시 약 1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미국 물류기업 UPS는 어라이벌에 전기밴 1만대를 선주문했다. 그러나 전기밴은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시제품 ‘UPS 밴’은 차량 화재 문제가 불거졌다. 마이크로 팩토리는 예상보다 투자가 더 필요해 “입증되지 않은 전략”이라는 의구심이 커졌다.

어라이벌은 연이은 적자로 현금이 부족해졌고, 작년 9월 “회사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총 3억3000만달러(약 4300억원)로 향후 12개월 동안 운영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고 밝혔다. 올 초엔 “직원 50%(약 800명)를 해고해 비용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어라이벌 주가는 한때 주당 31달러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20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어라이벌은 30일 연속 주당 가격이 1달러 미만에 거래되며 나스닥 상장폐지 대상이 됐다. 나스닥 증권거래소는 작년 11월 어라이벌에 경고서한을 보냈고, 어라이벌은 6개월 내인 올해 5월 1일까지 주가를 1달러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현대차그룹으로선 투자금 전액(1290억원)을 손해 볼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