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000270)가 1조원 이상을 투자해 국내에 새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이 10개월째 진전되지 못하고 표류 중이다. 국내 생산 및 투자와 관련해 노동조합과 사측의 의견이 일치해야 한다는 단체협약 탓이다. 노조는 이 공장에서 연간 20만대를 생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생산대수가 많아야 일자리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사측은 불확실한 대외 경영환경을 고려해 1차 10만대, 2차 15만대로 차츰 생산량을 늘려나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1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경기 화성공장 내 유휴부지에 1조원 이상을 들여 전기동력계를 기반으로 하는 목적기반형차(PBV·Purpose Built Vehicle)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지난 2월 노사 합의로 확정했다. 당초 내년 3월에 착공할 계획이었으나 생산량을 놓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계획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올해 안으로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체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다고 본다.
기아 화성 신공장은 PBV와 픽업트럭 부품 생산을 위해 기아가 1995년 이후 27년 만에 국내에 투자하는 공장이다. 투자액은 1조원 이상이다. 픽업트럭 부품은 2024년말, PBV는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최근 기아는 화성공장장 명의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소속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에 공장 착공에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사측은 “신(新)공장과 관련해 14차례나 협의를 진행했음에도 진척이 없어 전체 사업계획 차질이 우려된다”며 “노사 모두에 주어진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라고 했다. 또 “성공적인 신공장 건설로 차량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노사가 다해야 할 책무”라고 밝혔다.
노조는 지금까지 사측과 10번의 실무협의, 4번의 본협의 등 총 14차례 진행한 ‘고용안정소위원회’에서 PBV 공장 생산규모를 연간 20만대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새 공장 안에 동력계(파워트레인) 모듈 공장을 추가 배치할 것과 기존에 외주화한 차체, 도어 공정을 내재화하는 방안도 요구 중이다.
노조 요구는 기아 노사 단체협약 제47조에 의거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신프로젝트 개발, 신기술, 신기계(자동화) 도입 등을 노사 의견 일치에 의해 진행하고, 시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노조 측은 “화성지회 고용소위에서 진행되는 신공장 건설, 신사업 전개에 있어 사측은 노조 요구안을 무시하고 노조를 고립시키려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화성 PBV 신공장과 관련해 노조 내 갈등도 터져 나오는 중이다. 교섭을 통해 노사 입장차를 줄여보겠다는 노조 집행부와 다르게 일부 강성파는 대화에 앞서 생산량에 대한 확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고용소위 5차 본협의가 무산됐다.
기아 노조는 광명2공장의 전기차 전환을 놓고도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수출용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스토닉과 소형차 프라이드를 생산한다. 전기차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 차종 생산을 협력사에 맡기려고 하는데, 노조 측은 고용 불안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단협에서는 생산 차종의 외주화 역시 노사 의견을 일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의 스토닉 외주화 시도가 단협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노조는 협력사 동희오토를 인수합병(M&A)하라는 주장도 펼친다. 노조 측은 지난달 소식지에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기조 아래 동희오토 관련해 기아 법인으로 통합할 것을 (사측에) 강력히 요구했다”라며 “노조는 동희오토가 기아 법인으로 통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