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발한 양국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탈(脫)러시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르노그룹과 일본 도요타가 사업을 철수한 데 이어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미국 포드도 현지 사업을 매각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 사업을 운영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돼 업체들이 아예 러시아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에 있는 현대차(005380) 공장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인데, 현대차는 “당장 사업 철수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28일 러시아 정부와 벤츠에 따르면 벤츠는 러시아 자회사 지분을 현지 딜러사인 아브토돔에 매각할 계획이다. 벤츠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공장은 지난 3월 생산이 중단됐다. 포드 역시 현지 합작사 포드솔러스의 지분을 매각했다. 다만 포드는 지금의 갈등 상황이 바뀔 경우 5년 내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옵션을 달아 지분을 매각했다. 폭스바겐 역시 운영이 중단된 러시아 공장에 대한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현대차 러시아 공장 모습./연합뉴스

앞서 일본 완성차 브랜드도 러시아 사업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제품 수출도 했던 도요타는 공장 운영을 완전히 종료하고, 현지 판매망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판매한 차량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유지하겠지만, 현지 법인은 청산해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로 했다.

닛산은 러시아 현지 공장과 연구 시설을 단돈 1유로에 러시아 국영기업에 넘겼다. 르노그룹 역시 6년 내 되살 수 있는 권리를 조건을 달았지만, 현지 공장 지분을 2루블에 매각했다. 이들 글로벌 업체는 자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전략 시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러시아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러시아 내 점유율이 높은 현대차그룹은 고심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 폭스바겐 등이 러시아 내 사업 비중을 줄이는 사이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사업을 꾸준히 확대했다. 러시아를 유럽 진출 확대를 위한 전초 기지로 삼아 생산망을 구축하고, 러시아 내 생산도 늘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지난해 현대차 러시아생산·판매법인의 판매 실적(내수와 수출 포함)은 23만여대로, 인도와 중국, 미국, 체코에 있는 현대차 공장 다음으로 실적이 많았다.

하지만 전쟁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직접 겨냥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갈등 국면은 지속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기로 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이 경우 한국과 러시아 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푸틴의 발언에 대해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인도적·평화적인 지원을 국제 사회와 연대해서 해왔고 살상무기는 공급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했다.

주우정 기아(000270) 재경본부장은 지난 26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매출에 부정적인 요인을 꼽자면 러시아와 관련된 변동성이 커지고 자동차 시장 자체가 당분간 완전히 폐쇄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 경우 현지에 자동차를 공급할 수 없어 애프터서비스 사업만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