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의 원인은 전기차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지만, 아파트나 오피스, 대형 상업시설의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에서 화재가 날 확률은 적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진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27일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지하 1층 하역장 쪽에서 발생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화재 현장에 전기차는 없었다. 발화지점 주변에 1톤(t) 트럭 한 대가 있었는데, 소방 관계자는 “내부에 연료통이 있어 내연기관차로 보인다”면서 “일부 언론이 충전 중이던 전기차가 폭발했다고 보도했으나,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발화지점 주변은 종이상자와 의류 등이 다수 쌓여 있었다.
이번 사고소식이 알려진 직후 화재 원인으로 전기차가 지목됐다.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는 열폭주를 일으켜 불이 급격히 번지고 진화도 어려워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전기차 충전소를 관리하는 차지인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아울렛 영업시간 이전에 화재가 발생해) 화재 발생 시점에는 충전 차량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화재가 발생한 장소도 전기차 충전기가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 진입이 어렵고 유독가스가 배출되지 않는 지하층의 특성과 완전 진화까지 7시간이 걸리는 전기차의 특성이 맞물려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충전소를 지상에만 짓자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독일 쿨름바흐시와 레온베르크시는 작년 초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주차할 수 없도록 제도를 마련해 시행한 바 있다. 2020년 9월 쿨름바흐시내 한 지하 주차장에서 내연기관차 폭스바겐 골프에서 불이 나 19만5000유로(약 2억7000만원)의 재산 피해를 입히고 5개월간 주차장이 폐쇄된 사건이 발단이었다. 내연기관차 화재였지만 “전기차에서 불이 났으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주차를 금지했다.
쿨름바흐시는 당시 “지하 주차장은 중장비를 실은 소방차가 들어갈 만큼 층고가 높지 않고,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는 며칠 동안이나 계속 연소할 수 있다”면서 “미래에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더 이상 지하주차장에 주차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런 사례는 예외적이다. 독일은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주차·충전을 금지하는 법을 국가 차원에서 따로 두지 않고, 다른 해외 국가에서도 이런 규제는 찾기가 어렵다. 쿨름바흐시와 레온베르크시의 조치도 몇 달간만 시행되다 곧 폐지됐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많은 화재를 일으키지 않으며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안전하게 진압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 자동차 보험 비교 사이트 오토보험EZ(AutoInsuranceEZ)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자료를 기반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차량 10만대당 화재 발생 건수는 하이브리드차가 3475건, 내연기관차가 1530건, 전기차가 25건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전기차가 내연기관보다 더 자주 불이 난다는 것은 오해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끄기가 훨씬 어렵다는 점에서 지하주차장의 화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단독주택 문화가 아니고 대부분이 아파트에 거주해 지상에만 충전소를 짓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해외에도 지하 전기차 충전소를 규제하는 법안은 없다”면서도 “소방청에서 화재를 안전하게 진압할 조치를 마련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 전기차 충전소의 구획을 확실히 나눠, 주변을 콘크리트 담으로 쌓거나 주차면 바닥이나 천장에 진화 장비를 갖추는 등 전기차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