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했던 미국 브랜드 테슬라가 올해 3위로 떨어졌다. 테슬라가 원가 상승을 이유로 수시로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품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이 다른 브랜드가 잇따라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국내 시장에서 테슬라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정보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국토교통부 자동차등록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테슬라 판매량은 989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4082대)보다 30% 감소했다. 올해 8월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인 10만대에 육박했는데, 테슬라는 오히려 판매량이 줄었다. 올해 전기차 판매 순위를 보면 기아(000270)와 현대차(005380)가 테슬라를 제치고 1~2위를 차지했다.
테슬라 판매가 단기간 크게 추락한 직접적인 이유는 물량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3개월에 한 번 선박을 통해 국내에 물량을 공급하는데, 최근 글로벌 생산 상황이 좋지 않아 국내에 배정되는 물량이 적었다. 테슬라 판매를 월별로 보면 1월과 4월에는 각각 1대씩이었고, 7월에는 아예 판매 실적이 없었다.
최근 업계에서는 테슬라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과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면서 “테슬라 가격은 시가(市價)”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내 판매 가격을 수차례 인상하면서 소비자의 불만이 커졌다.
테슬라의 전기 세단 ‘모델3′ 스탠다드 트림의 경우 지난해 초 5479만원에서 두 차례 가격을 인상해 연말에는 6059만원까지 올랐다. 보조금까지 포함하면 연초에 차를 구매한 소비자와 연말에 산 사람의 가격 차이는 1000만원에 달한다. 현재 모델3 스탠다드 트림 가격은 7034만원이다.
지난해 6999만원에 출시된 ‘모델Y’ 롱레인지 트림은 현재 9695만원으로 40% 가까이 올랐다. 테슬라의 가격 정책을 비판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최근 카플레이션 현상을 고려해도 테슬라의 가격 인상은 폭등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테슬라가 품질이나 서비스 개선 없이도 계속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고가 정책’을 쓰는 배경에는 탄탄하게 구축된 팬덤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테슬라를 옹호하는 세력을 칭하는 ‘테슬람’(테슬라+이슬람)이라는 조어도 생겨났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도는 ‘수요 초과’ 상황이 발생하자 테슬라는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가격을 올려도 살 사람은 산다”는 식의 수익 극대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지만 품질이나 부족한 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크다. 온라인 판매 정책을 고집하면서 국내 소비자에게 생산이나 판매 관련 정보도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델Y의 판매가 수개월 돌연 중단했는데, 계약자들에게 취소 수수료 10만원을 환불해주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국내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외 선택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소비자 불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국내 시장에서 테슬라의 입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