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아도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모바일 로봇이 등장할 전망이다. 전기차 전환 속도는 빨라지는데 인프라 구축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바일 충전 로봇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LA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EV세이프차지는 최근 ‘지기(ZIGGY)’라는 이름의 자율주행 충전 로봇을 공개했다. 성인 키 정도 높이에 네 바퀴로 움직이는 지기는 전기차가 주차된 곳을 직접 찾아가는 충전기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지기를 호출할 수 있고, 충전이 끝나면 지기는 충전소로 돌아간다.

미국 스타트업 EV세이프차지가 개발한 자율주행 충전 로봇 '지기'./EV세이프차지 제공

지기는 충전 속도가 빠른 레벨 3로,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EV세이프차지는 지속적인 기술 지원과 유지 보수가 포함되는 CaaS(Charging as a service) 비즈니스 모델로 지기를 사업자에게 구독 형식으로 임대할 계획이다. EV세이프차지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포르셰, 스텔란티스, 닛산, 재규어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인프라 보급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가능거리가 내연기관차보다 짧고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 전기차 보급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충분한 충전소를 설립하려면 상당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대적인 인프라 구축 없이 기존 주차장에서 모바일 로봇을 통해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EV세이프차지 측은 “탄소 배출 감축 노력과 이에 따라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 인프라를 설치하는 대신, 사무실이나 쇼핑몰, 아파트 단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간단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지기를 개발했다”라고 말했다.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별도의 충전 시설 없이 자율주행 로봇을 이용해 전기차를 충전하려는 시도는 국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005930) 사내 벤처 육성프로그램인 ‘C랩 인사이드’를 통해 탄생한 스타트업 에바는 로봇과 카트를 활용한 이동식 충전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에바는 좁은 주차 면적 때문에 전기차 운전자와 내연기관차 운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이동형 충전기가 크게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바의 이동형 전기차 충전기./에바 제공

에바의 시도에 국내 대기업의 관심도 크다. 초창기 삼성전자와 네이버가 투자에 참여했고, 현대차(005380)와 SK렌터카에서도 투자금을 유치했다. 에바는 전기차 충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제주도에서 이동식 충전서비스 실증사업을 진행했는데, 상용화를 위해 기술과 안정성을 계속 점검하고 있다.

무선 충전기 업체 에코스이엔씨도 한국전자기술연구원과 함께 자율주행 충전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운전자가 충전을 요청하면 로봇이 충전된 배터리 카트를 이송해 호출 위치와 차량을 인식한 뒤 전기차와 충전 키트를 연결해 충전하는 시스템이다. 충전이 완료되면 로봇은 다시 충전 스테이션으로 자율 복귀한다. 에코스이엔씨는 내년 제품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