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브랜드를 막론하고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이 지속되면서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모델을 미리 계약하는 이른바 자동차 ‘입도선매(立稻先賣)’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감당하지 못하는 전기차 모델의 경우 공식적인 사전 계약이 시작되기 전에 딜러사를 통해 미리 사전 계약을 체결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코리아는 올해 하반기 브랜드의 첫 순수 전기차 ‘ID.4′를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 전기차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본사와 생산 공장이 있는 유럽에서도 대기 수요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공급 여력이 크지 않아 정확한 출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독일 북부 엠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폭스바겐의 첫 순수 전기차 'ID.4'./AFP=연합뉴스

출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판매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물론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를 포함한 구체적인 차량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1000명이 넘는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밝혔다. 딜러사들이 비공식적으로 받고 있는 사전 계약을 통해서다. 계약금은 딜러사마다 다르지만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이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유럽에서 ID.4가 이미 판매되고 있지만, 주행 가능거리를 포함한 구체적인 차량 성능과 내외부 옵션은 국내 법 기준이나 소비자 선호가 반영돼 결정된다”며 “아직 이런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많은 고객이 딜러사를 통해 사전 계약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판매되는 모델이기 때문에 내외관 디자인이나 주행 성능은 확인할 수 있지만, 출시도 안 된 차를 구매하겠다고 나선 소비자들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차를 구매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공급난 여파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수요를 충족할 만큼 많은 차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가 더 많이 탑재되는 전기차의 경우 생산 차질이 더 심각하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기차 현대차 ‘아이오닉 5′나 기아 ‘EV6′의 경우 구매 대기 기간이 1년이 넘는다.

수입차의 경우 딜러사를 통해 미리 구매 예약을 해놓으면 해당 브랜드가 출시 발표 이후 공식 사전계약을 실시한 후에도 구매 순번이 유지되기 때문에 미리 딜러사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 사전 계약을 취소해도 계약금은 모두 돌려받을 수 있어 여러개 모델을 동시에 사전 계약해 놓는 사례도 많다.

올해 8월 출시 예정이라는 소식만 전해진 아우디의 전기차 ‘Q4 e-트론’ 역시 지난해부터 사전 계약이 이뤄지고 있는데, 최근 일부 딜러사는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물량보다 많은 사전 계약 요청이 들어왔다며 더이상 사전 계약을 받지 않고 있다.

Q4 e-트론 역시 가격을 포함한 차량 제원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에서 4만3900달러(약 550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Q4 e-트론의 경우 국내에 출시될 경우 전기차 보조금을 전액 받을 수 있는 기준인 5500만원보다 낮은 가격으로 출시될지 소비자들의 관심이 큰데, 가격이 결정되기 전에 구매 예약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