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체 노조가 사측에 ‘일감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현대차(005380) 노동조합은 전기차 시대에 인력 수요가 줄어들자 고용 유지를 위해 계열사가 하던 일감을 가져와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올해 완성차 업체 노조가 임금·단체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핵심 의제는 임금 인상을 포함한 ‘일감 배정’과 ‘고용 안정’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단체교섭 요구안에 고용 안정을 위해 구동시스템(PE모듈) 등 전기차 핵심 부품을 현대차가 직접 만들게 해달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PE모듈은 전기모터와 인버터, 감속기, 전력제어를 통합한 전기차 구동시스템으로, 그룹 부품사 현대모비스(012330)가 생산해 현대차와 기아(000270)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자 PE모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PE모듈을 사내에서 조립하도록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 스마트 공장./현대차 제공

현대차 노조는 또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PBV(목적기반자동차) 등 미래 모빌리티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아 노조 역시 “전기차 핵심 부품의 외주화와 모듈화로 고용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며 “국내 공장에서 전기차 핵심 부품을 생산하고, 증설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동화 전환이 빨라지면서 엔진과 변속기 등 전기차에는 들어가지 않는 부품을 생산하는 엔진공장의 위기감이 크다. 현대차·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등 국내 5개 완성차 업체는 모두 엔진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면 엔진 생산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본사에서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엔진 공장에도 계속 일감이 배정되는데, 본사에서 엔진 신규 개발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엔진 생산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GM 관계자 역시 “국내 공장에서는 내연기관 모델만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창원 엔진 공장이 가동되고 있지만, 본사에서 전기차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5~10년 이후에는 엔진 공장의 일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르노코리아와 쌍용차의 경우 전동화 전환 속도가 느려 노조가 느끼는 위기감이 낮은 상태이지만, 이들 업체 노조 역시 안정적인 일감 확보를 위한 방안을 사측에 촉구하고 있다.

고용 안정을 위한 노조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지만, 전기차 수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인력 감축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전기차는 탑재되는 부품 수가 적기도 하지만, 핵심 부품을 외주화하거나 모듈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정년 퇴직자가 연간 수백명에 이르지만, 생산 분야에서 신규 채용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식의 자연 감소로 사실상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