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기 화물차를 구매한 자영업자 A씨는 최근 주행 중 ‘전기차 시스템을 점검하라’는 경고문이 뜨자 정비소를 찾았지만, 고장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비소 엔지니어가 진단기를 연결해 ‘고전압 부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뿐이었다.

해당 정비소는 “문제가 생긴 건 맞는데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다른 정비소에서 다시 진단과 정비를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A씨는 다른 지역 정비소 두 곳을 더 방문한 뒤 문제가 발생한 배터리 팩을 교환할 수 있었다.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고 정비 수요도 증가하면서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7만여대의 순수 전기차가 판매됐다. 고용량 배터리와 내연기관 엔진이 함께 장착된 하이브리드차(15만대)와 수소연료전지차까지 포함하면 전동화 모델은 23만여대가 판매돼 전년보다 40% 늘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공격적인 전동화 전환 계획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 전기차 판매는 더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기아의 서비스 협력사 오토큐에 설치된 전기차 정비 작업장 ‘EV 워크베이’./조선일보 DB

전기차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비 인력은 충분하지 않다. 신규 인력을 육성하거나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는 것 모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전기차 판매 1위인 현대차(005380)의 경우 전국에 서비스 센터가 1400여곳인데, 이 중 전동화 차량 수리가 가능한 거점은 전기차 전담 370여곳과 수소전기차 전담 60여개소에 불과하다.

기계 장치인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고전압 배터리와 다수의 전장 부품을 탑재한다. 전기차를 정비하려면 배터리와 전장 부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국내 정비 업계에는 관련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타이어 등 소모품 교체나 가벼운 접촉사고로 인한 외관 정비 등은 크게 문제가 없지만, 전기차 시스템이나 내부 부품에 문제가 생긴 경우 정확한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정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 중이다. 정비 등 사후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는 장기적으로 신차 판매와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탄탄한 정비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현대차가 서비스 센터에 제공하는 전기차 수리 장비./블루핸즈 송악서비스 제공

현대차는 조만간 전기차 정비기술인증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전국 서비스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전기차 정비 능력을 평가·인증해 전문 인력을 양성·확충하기 위한 것이다. 기아(000270)는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정비 협력사 오토큐 소속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전기차 정비기술인증제도 ‘KEVT’를 도입했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문 정비사를 육성하기 위해 정비 기초부터 고전압 장비 안전, 정비 절차 등을 담은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국내외 서비스 센터에 배포했다.

해외에서도 전기차 전문 인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미국 포드는 전담 딜러 조직과 함께 ‘전기 대학(Electric University)’을 설립하기로 했다. 본사가 있는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전동화 전문 교육 기관을 설립해 전기차 판매부터 정비 서비스, 부품 전문가 등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팀 호빅 포드 전국딜러위원회 회장은 “포드의 전기차 판매 목표와 전기차 시장에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을 감안하면 전기차를 판매하고 정비하는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