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현대차(005380)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캐스퍼를 필두로 판매량 반등에 시동을 걸어온 경차가 올해 산뜻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전체 신차 등록대수에서 소형차와의 격차를 크게 줄였고, 올해 첫 달에는 소형차 판매량을 넘어섰다. 올해 캐스퍼는 생산량을 늘리고 다른 경차들도 상품성을 높인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라 경차 시장이 6년 만에 소형차 시장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이달부터 4000대, 내달부터는 4500대로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다. GGM 공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그간의 안정화 기간을 거쳐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캐스퍼의 생산은 출시 첫 달을 제외하고 매달 3000대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기아(000270)의 대표 경차인 레이도 캐스퍼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레이는 전체 국산차 중 11위, 기아 브랜드 내에서는 판매량 5위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투싼이나 아이오닉5, 기아의 세단라인업인 K5, K8보다도 많이 팔렸다. 레이는 지난달 1인승으로 개조해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한 레이 밴을 출시했다. 기아는 레이 밴을 구매하는 소상공인에게 무이자 할부와 할인 지원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단종된 다마스와 라보의 수요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세제 혜택을 무기로 2000년대 초반까지 견고한 시장을 유지했던 경차는 큰 차 및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선호 현상이 이어지면서 설 자리를 잃어왔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20만4158대였던 국내 경차시장은 지난해 9만6842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중대형 모델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경차의 판매량이 줄자 완성차 업체들은 일부 모델을 단종했다. 비교적 최근까지 남아있던 기아 프라이드가 2017년 5월, 쉐보레 아베오가 2019년 3월에 자취를 감췄다. 이후 현대차 엑센트가 2019년 7월 단종되면서 지난해 초까지 남아있던 경차는 모닝, 레이, 스파크에 불과했다.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쌍용차와 르노삼성차는 국내에 아예 경차를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차 부진은 캐스퍼의 등장으로 전환기를 맞았다. 지난해 현대차가 19년 만에 새로운 경차인 캐스퍼를 출시하면서 기아도 상품성을 강화한 모닝과 레이 등을 연달아 내놓았다. 이 덕분에 지난 1월 경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0.8% 늘어난 1만230대를 기록했다. 현대차 베뉴, 코나 기아 니로, 셀토스, 쌍용자동차 티볼리 등 모델 수가 훨씬 많은 소형차보다 700여대 더 많이 팔린 것이다. 큰 차 선호 추세에 소형차에 대한 인기도 식어가면서 연간 판매대수는 거의 비슷해지고 있는데, 2019년 8만2000대까지 벌어졌던 차이는 지난해 2만2000대까지 좁혀졌다.
올해 세제혜택 강화 및 고유가 등 대외환경도 경차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지방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경차 취득세 감면 혜택이 2024년까지 75만원으로 기존보다 25만원 올랐다. 연간 20만원 한도였던 경차 유류세 환급 한도액은 30만원으로 늘었으며 2023년까지 2년 연장된다.
최근 우크라 사태로 치솟는 유가도 경차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친환경 추세와 최근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올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경차의 강세가 예상된다”며 “다만 캐스퍼를 제외한 나머지 경차들은 디자인이나 상품 개선이 수년간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