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쓰비시가 2026년부터 내수차용 플랫폼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많게는 수천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독자 플랫폼을 개발하는 대신 협업체를 꾸린 닛산의 플랫폼을 활용해 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완성차 업체가 자동차 생산의 핵심인 플랫폼 개발을 중단한 것은 미쓰비시가 처음이다. 이번 결정은 지난 2년 동안 적자를 본 미쓰비시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차 플랫폼은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 조향·배기·공조·연료 장치 등 핵심 요소를 갖춰놓은 일종의 뼈대다. 업체들은 플랫폼 위에 차체를 얹어 완성차를 만든다.
플랫폼이 어떻게 개발되느냐에 따라 자동차의 기본 성능이 결정되기 때문에 플랫폼 개발 능력은 곧 해당 자동차 업체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자동차가 외부 충격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 무게 중심이나 배분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내부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는 지도 플랫폼에 따라 결정된다. 완성차 업체들이 플랫폼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같은 폭스바겐 그룹 안에 있는 아우디와 포르셰가 플랫폼을 공유하듯 그룹사 내 다른 브랜드가 플랫폼을 함께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플랫폼을 공유하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업체가 신차를 개발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플랫폼 설계인데, 검증된 플랫폼을 활용하면 초기 비용과 시간을 상당히 아끼게 된다. 대신 업체들은 플랫폼 위에 다양한 성능의 동력 장치를 얹고 차별화된 디자인의 차체를 조립해 다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005380)의 3세대 플랫폼은 현대차 중형 세단 ‘쏘나타’부터 SUV ‘싼타페’ MPV ‘스타리아’, 기아 ‘K5′ ‘쏘렌토’ 등이 모두 공유한다.
전기차·자율주행차의 등장으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플랫폼 공유 바람이 더 거세지고 있다. 자동차의 기본이 되는 플랫폼보다 다른 기술을 통해 제품을 차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더라도 배터리 용량을 늘려 전기차 주행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고, 자율주행 수준을 끌어올려 차의 상품성도 크게 높일 수도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는 동일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주행 가능 거리와 주행감, 디자인 등 많은 면에서 차별화를 이뤘다.
미래차의 등장으로 플랫폼 공유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다. 앞서 일본 혼다는 전기차 플랫폼 개발을 위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혼다가 북미에서 판매할 전기차 모델은 GM이 개발한 플랫폼을 갖다 쓰고 대신 혼다가 중형 전기차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 개발하고 있는 플랫폼은 GM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포드 역시 독일 폭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을 사용한다. 르노그룹은 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와 플랫폼의 공유율을 2020년 39%에서 2025년 8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플랫폼 모듈화를 통해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는 점도 플랫폼 공유를 부추기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플랫폼 구성 부품을 다양한 조합으로 모듈화함으로써 플랫폼을 더 다양하게 활용하고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모듈화를 통해 플랫폼을 공유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인 상품의 무차별성을 개선할 수 있다”며 “업체들이 그동안 플랫폼 개발에 들이던 자원을 보다 다양한 분야로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