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에 이어 삼성카드(029780)가 보유하고 있는 르노삼성 지분도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변화에 뒤처진 국내 중견 완성차 업체의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삼성카드는 보유하고 있는 르노삼성 지분 19.9%를 모두 매각하기로 했다. 르노삼성 지분은 르노그룹이 80.04%, 삼성카드가 19.90%, 우리사주조합이 0.06%를 보유하고 있는데 2대 주주인 삼성카드가 지분을 모두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의 르노삼성 지분 매각은 예견된 일이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8월 르노삼성과 브랜드 이용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르노삼성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대가로 삼성에 국내 매출의 0.8%를 지급해왔지만, 최근 실적 부진과 노사 갈등이 겹치면서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환경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차 판매가 줄어 실적이 악화된 르노삼성은 브랜드 사용료 지급조차 부담스러운 처지가 됐고, 삼성 역시 이용료와 배당 수입이 줄어든 가운데 부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르노삼성은 국내 5개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지난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르노삼성은 높은 생산 비용 때문에 본사로부터 충분한 일감을 배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노조는 3년째 전면 파업을 벌이면서 사측과 갈등하고 있다.
한편 르노그룹은 지난 9일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기업인 지리차와 함께 친환경차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르노가 지리차의 기술을 활용해 중국에서 판매할 친환경차를 만들고, 지리차가 볼보와 함께 만든 브랜드 ‘링크앤드코’가 개발한 친환경차는 르노삼성을 통해 한국 시장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르노삼성의 역할이 판매 중심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간 쌍용차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 미국 HAAH오토모티브가 쌍용차 인수를 위해 설립한 카디널원모터스와 SM그룹,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에디슨모터스가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쌍용차 매각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영업손실 규모가 1780억원에 이르는 등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쌍용차 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은 “불확실성이 크다”며 쌍용차 반기보고서에 대한 감사 의견을 거절했다. 쌍용차의 자본잠식률은 99% 수준이다.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GM도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GM은 올해 1~7월 국내외 시장에서 총 17만4000대 정도를 판매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판매량이 30만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2012년에 내수와 수출을 합쳐 연간 80만대를 팔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GM 본사 역시 생산성을 이유로 한국에 신차 배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낮은 가동률이 지속될 경우 인천 부평1·2공장이나 경남 창원공장도 2018년에 폐쇄된 군산공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GM은 2035년까지 미국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GM은 아직 본사로부터 배정받은 전기차 생산 물량이 없다.
시설투자·인건비 등 막대한 고정비 부담을 지고도 생산 능력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물량을 판매하면서 적자가 이어지는 이들 업체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전기차·자율주행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면 구조조정 시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구개발(R&D) 역량이 없는 르노삼성과 쌍용차를 비롯해 중견 완성차 3사의 위기가 지속되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하반기에 큰 산업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들과 함께 산업 생태계를 꾸리고 있는 부품사의 타격도 심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