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현대차(005380)그룹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은 출시를 앞둔 싼타페 PHEV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독일에서는 투싼 PHEV가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드’가 진행한 PHEV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비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친환경차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는 과정에서 PHEV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시설 등 인프라가 구축 단계에 있는 데다, 배터리 전기차의 짧은 주행거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기존 인기 모델에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PHEV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PHEV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PHEV는 한 번 충전하면 전기모드로 30~50㎞ 정도를 주행할 수 있고, 이후로는 내연기관으로 달린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국내 PHEV 시장에선 발을 빼면서 국내 시장은 수입 브랜드의 리그가 됐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쏘나타·아이오닉·K5·니로의 PHEV 모델을 출시했지만, 지금 구매할 수 있는 PHEV 모델은 니로뿐이다. 정부의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이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중심으로 짜여졌고, 그나마 지난해까지 PHEV 한 대에 지급하던 500만원의 보조금을 올해부터는 아예 폐지하면서 국산 PHEV에 대한 수요가 뚝 떨어진 결과다.
수입 브랜드가 판매하는 PHEV는 대부분 고가의 모델로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가 주 타깃이지만, 국산차의 경우 보조금 정책이 구매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하이브리드·PHEV·배터리 전기차 모델이 모두 판매되는 니로의 경우 하이브리드 가격은 2439만~3017만원, PHEV 가격은 3438만~3651만원이다. PHEV의 연비가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해도 PHEV의 가격이 600만~1000만원 더 비싸다. 니로의 배터리 전기차 가격은 4590만~4790만원으로 PHEV보다 비싸지만, 국가·지방 보조금 약 1000만원을 받으면 PHEV와 가격이 비슷해진다. 가격만 고려하면 PHEV를 구매할 유인이 없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인 싼타페·투싼·쏘렌토 PHEV를 국내에 출시할 계획은 아직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국산 PEHV는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았다.
국내에선 국산 PHEV가 고사(枯死) 상태에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PHEV를 전기차로 분류해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4만유로 이하 전기차(수소차 포함)에 최대 90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PHEV에 대해서는 전기차의 75% 수준인 675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4만유로 이상~6만5000유로 미만 PHEV에는 최대 5625유로의 보조금을 준다.
지난 2019년 PHEV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했던 프랑스는 올해부터 정책을 바꿔 4만5000유로 이하 PHEV에 대해 2000유로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미국 정부는 PHEV 배터리 용량에 따라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지원한다. 또 북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한 많은 국가가 탄소 배출을 규제하기 위해 정해진 목표 시점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PHEV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주요국 정부가 PHEV를 친환경차 전환의 최종 목적지 중 하나로 설정하면서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동화 전환 목표 시점 이후에는 배터리 전기차와 PHEV만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PHEV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국내의 전력 생산 구조를 고려하면 순수전기차보다 오히려 PHEV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수입 브랜드의 PHEV 판매가 늘어나는 추이를 보면 PHEV 수요가 많다는 것이 확인되는데, 정부가 적정한 보조금을 지원하면 이 시장이 더 확대될 것”이라며 “PHEV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