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앤테크놀러지의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000240)는 지난해 6월 이후 본격화된 3세 간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었다. 조양래 회장이 3세 중 막내인 조현범 사장에게 보유하고 있는 한국앤컴퍼니 지분 전부(23.59%)를 양도하면서 불거진 남매간 갈등이 법정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경영권 분쟁은 지난 2월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이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그는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것을 제안했는데, 주주총회에서 이 제안이 통과된 직후 “최근 일련의 문제들로 인해 창업주 후손이자 회사의 대주주들이 대립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회사의 명성에 누가 될 수 있는 경영권 분쟁 논란의 고리를 근본적으로 끊어내고자 한다”며 사임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한국앤컴퍼니의 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계속 나왔다. 오너 3세들이 모두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 사장 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조선일보 DB

◇ 조양래 회장 복귀하며 승계작업 본격화

한국타이어는 1941년 일본 타이어 제조사 브리지스톤이 한국에 조선다이야공업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51년 한국다이야제조로 이름을 바꿨고 1967년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이 인수하면서 효성그룹에 편입됐다.

효성그룹의 2세 경영인 조석래 명예회장의 동생인 조양래 회장은 1985년 계열 분리를 해 한국타이어가 독립적인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조양래 회장은 1988년 홍건희 전 한국타이어 사장 취임 이후 줄곧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대주주 지위만 유지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타이어그룹을 효성그룹과 맞먹는 대기업으로 일궜다.

이후 조양래 회장은 24년 만인 2012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조양래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승계작업이 본격화됐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신규사업에 투자하는 지주회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를 존속법인으로 하고, 사업회사 한국타이어를 분할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조현식 부회장이 당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경영을 맡았고, 차남 조현범 사장이 한국타이어 경영을 주도했다.

이때부터 그룹 지배구조의 균형이 조현범 사장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존속 법인(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주주들이 일정 비율로 신설 법인 지분을 나눠 갖는 인적(人的) 분할 방식으로 분할됐는데, 분리 비율은 존속 법인이 18.6%, 신설 법인이 81.4%였다. 신설 법인으로 지분이 훨씬 많이 돌아가도록 분리 비율이 산정된 데다, 한국타이어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자회사가 되는 물적(物的) 분할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권이 핵심 회사인 한국타이어를 맡게 된 조현범 사장에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당시 조양래 회장은 장남 조현식 부회장을 존속 법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대표이사를 맡게 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지만, 이후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다시 한국앤컴퍼니로 사명을 바꿈)의 지분을 조현범 사장에게 양도하면서 그룹 경영 주도권을 차남에게 넘겼다.

조선일보 DB

◇ 조현범 사장, 사업 확대·경영권 안정 과제

조양래 회장의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은 조 회장이 한국앤컴퍼니의 지분을 조현범 사장에게 양도한 것에 반발해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을 선임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소송 결과는 한국타이어그룹 경영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만약 법원이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을 선임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지분을 양도한 것은 지난해 발생한 일이라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현재 조현범 사장이 보유한 지분이 나머지 3남매의 지분보다 많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재현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올해 3월 기준으로 한국앤컴퍼니의 지분은 조현범 사장이 42.9%로 가장 많고 조현식 부회장이 19.3%를 갖고 있다.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0.8%를 갖고 있고, 차녀 조희원씨가 10.8%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앤컴퍼니가 지분 30.7%를 가진 한국타이어의 경우 조양래 회장이 5.7%, 조현범 사장이 2.1%를 갖고 있고 조희경 이사장이 2.7%, 조현식 부회장이 0.6%, 조희원씨가 0.7%를 보유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조현범 사장은 그룹 내 경영권을 강화하고 미래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사업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국내 1위이자 세계 6위 타이어 회사로 성장한 한국타이어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등 독일 3대 고급차 업체뿐 아니라 포르셰와 같은 슈퍼카 브랜드 등 전 세계 글로벌 브랜드에 신차용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타이어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데다 미국 정부가 무역장벽을 높이면서 수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앞으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 심문에 출석한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연합뉴스

◇ 아트라스BX 합병 과정서 소액주주 반발… “집중된 지배력 분산해야”

한국앤컴퍼니는 오너 일가가 지분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이사회나 경영위원회 등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지배력이 집중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현범 사장은 한국앤컴퍼니의 대표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한국앤컴퍼니 이사회 내 경영과 재무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경영위원회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만 소속돼 있었다. 지난 3월에야 원종필 한국앤컴퍼니 전략기획실장이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되면서 경영위원회 위원이 3명으로 늘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대표이사가 곧 이사회 의장인 현재 구조에서는 내부 결정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족하다”며 “대표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앤컴퍼니가 지분 31.1%를 가진 배터리 전문 자회사 한국아트라스BX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소액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차량용 납축전지 전문 기업인 아트라스BX는 안정적인 사업으로 꾸준히 현금을 창출하고 있는 알짜 회사로, 한국앤컴퍼니는 아트라스BX를 합병해 사업형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합병 당시 소액 주주들은 합병 비율 등이 최대주주인 한국앤컴퍼니와 오너 일가에만 유리하게 결정됐다며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현범 사장이 대표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을 함께 맡고 있어 지배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며 “기업의 ESG(환경·사회적 책임·투명경영) 경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