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본 자동차 업체의 텃밭이었던 신흥국 시장에서 현대차(005380)·기아(000270)가 선전하고 있다. 올해 처음 인도 시장에서 월간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베트남에서도 판매 호조가 이어지고 있어 3년 연속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당장 일본 산업계에서는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전환이 한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차 업체들이 앞으로 경쟁에서 더 밀릴 수 있다는 우려다.

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시장에서 현대차·기아는 지난 5월 이례적인 판매 기록을 세웠다. 5월 한 달 동안 3만6501대를 팔아, 인도 시장의 터줏대감이던 일본계 마루티스즈키(3만2903대)를 처음 넘어선 것이다. 마루티스즈키는 일본 스즈키가 인도 국영기업 마루티와 설립한 합작사로, 1981년 들어선 이후 인도 1위 자동차 업체로 명성을 떨쳤다.

마루티스즈키는 인도 1위 자동차 업체였지만, 지난 5월 현대차가 처음 월간 판매량에서 마루티스즈키를 넘어섰다./교도통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루티스즈키의 인도 시장 내 점유율은 60%대를 유지했지만, 현대차·기아가 내놓은 크레타·셀토스 등 SUV 모델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점유율이 크게 낮아졌다. 지난 5월 현대차·기아의 인도 시장 점유율은 35%로, 마루티스즈키(32%)를 앞질렀다.

베트남에서도 현대차·기아의 기세가 무섭다. 베트남자동차공업협회 집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1~5월에 누적으로 2만4420대를 판매해 도요타 판매량(2만4112대)을 앞질렀다. 기아는 2만3440대를 팔았는데, 현대차·기아 합산 판매량(4만7860대)은 도요타의 두 배 수준이다.

베트남 역시 그동안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일본 업체가 주도하는 시장이었다. 그런데 2011년 처음 베트남에 진출한 현대차가 소형차 i10·액센트 모델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였고, 지난해에는 처음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차 엑센트./현대차 제공

일본 업체들이 장악했던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입지가 커지자 일본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일본 업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일본 언론 재팬인뎁스는 인도에서 마루티스즈키의 점유율이 낮아지는 상황을 조명하면서 “마루티스즈키는 현대차 등 경쟁사와 비교해 SUV 부문이 약하고, 중국 업체 등 인도 시장에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어느새 후진국이 돼 버렸다”는 자조적인 논설을 실으면서 전기차 산업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흥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점유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올해 말 준공 예정인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전기차 등 연간 15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