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자동차 부품기업 콘티넨탈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로부터 양산차 공급용 ‘필러 투 필러 디스플레이(Pillar-to-Pillar)’를 대량으로 처음 수주했다고 밝혔다. 필러 투 필러 디스플레이는 차량 내부 운전석쪽부터 조수석까지 하나로 쭉 이어진 긴 디스플레이를 말한다. 콘티넨탈은 “과거 완성차업체들이 마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오늘날에는 화면 크기와 사용자 경험(UX)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이 차량 내 스크린을 더 키우고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미고 있다.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넓은 스크린을 기반에 둔 다양한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정보와 오락의 합성어)로 차별화된 모빌리티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인포테인먼트는 차량 내 첨단 기능과 오락거리를 추가한 시스템으로 자동차를 단순 이동수단이 아닌 하나의 문화·생활공간으로 진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벤츠의 전기차 EQS에 탑재되는 MBUX 하이퍼스크린. / 벤츠 제공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10일 올해 말 출시되는 벤츠의 럭셔리 전기세단 EQS에 탑재될 대형 디스플레이 MBUX 하이퍼스크린을 국내에 공개했다. 운전자와 조수석 사이 전 영역에 걸쳐 있는 대형 곡선 형태의 스크린은 성인 남성이 팔 한 쪽을 뻗어도 절반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두 개의 원형 계기판 위주인 기존 디자인에서 탈피해, 세 개의 모니터가 각각 차량의 다른 부분을 담당하고 탑재된 인공지능이 사용자 편의에 맞춘 사양을 제공한다.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캐딜락도 다음달 출시 예정인 신형 에스컬레이드를 선보였다. 풀사이즈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답게 모든 디자인이 큼지막했지만 대시보드의 선명한 스크린과 계기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신형 에스컬레이드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는 세계 최초로 적용된 LG디스플레이(034220)의 38인치 LG 커브드 OLED다. 이는 4K급 텔레비전보다 2배 이상 개선된 화질을 제공하며 차량에 대한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테슬라 모델S 플레이드 내부. /테슬라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센터페시아와 연결해 세로형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제조사들도 있다. 르노의 소형 전기차 조에는 센터페시아에 9.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를 배치했다. 차체가 소형이다보니, 양옆으로 길게 늘인 디스플레이보다는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더 넓은 공간감을 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월 출시된 테슬라의 모델 S는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가 대형 박스 형태로 변경돼 시선을 끌었다. 기존에 있던 칼럼식 기어레버는 스크린으로 사라져 터치를 통해 차량을 조작할 수 있게 됐다.

스크린이 널찍해진만큼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도 다양해졌다. 과거 라디오나 DMB 정도가 탑재된 수준에서 벗어나 차량 내 결제, VR(가상현실) 게임, 인공지능 차량 제어 등 더 고도화된 기능들을 터치나 음성인식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최근 연식변경 모델로 돌아온 르노삼성 XM3의 특징 중 하나는 편의점, 주유소, 카페 등에서 실시간으로 결제하고 픽업하는 인카페이먼트 시스템이다. 르노삼성은 국내 최초로 차량 내에서 식음료를 결제하고 매장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근처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해 진화된 언택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유소, 주차장 내 결제가 가능한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페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형태다.

지난 13일 테슬라 공식 트위터에는 탑승객이 테슬라 세단 모델 S의 고성능버전 모델S 플레이드에서 센터페시아 스크린으로 최신 게임 ‘사이버펑크'를 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테슬라에 따르면 모델S 플레이드는 플레이스테이션 5에 맞먹는 게임플레이 성능을 채택했으며 뒷좌석에도 8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2열 승객들도 게임 등 차량 내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테슬라에 따르면 해당 스크린에는 반도체 회사 AMD가 만든 그래픽카드가 탑재돼 최신 게임들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다만 도로교통법 제 49조 1항에 따라 국내에서는 운전 중 운전자의 시야 내에서 게임이나 방송 등 영상물을 수신하거나 재생하는 관련 활동이 모두 제한된다. 이 때문에 영상, 게임 콘텐츠 등이 인포테인먼트로 탑재돼도 운전 중에는 운전석과 조수석 탑승자의 영상 시청 및 게임 실행은 어렵고, 2열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출시 예정인 기아의 대표 플래그십세단 ‘더 뉴 K9’에는 음악플랫폼 멜론이 기본으로 탑재됐다. 음악 검색을 비롯해 인기곡 차트인 ’24hits’와 내 플레이리스트, 최신 곡 추천 등 멜론이 제공하는 여러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또 기아 차량에 이전부터 적용되던 카카오i와도 연동대, 음성인식으로 멜론을 실행한 뒤 듣고 싶은 노래 제목이나 가수를 검색할 수 있다. 기아와 멜론 외에도 KT(030200)의 음악플랫폼 지니 등이 벤츠, 벤틀리 등을 비롯한 여러 완성차 업체와 협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만이 공개한 디지털 콕핏 전방에 채용된 49인치 QLED 디스플레이./하만인터내셔널

아직 차량에 탑재되지는 않았으나 삼성 하만이나 LG 디스플레이가 선보인 미래 가상 디지털콕핏은 기능이 더 다양하다. 지난 1월 하만은 미디어데이를 통해 전면을 가릴 정도로 큰 스크린을 탑재한 디지털 콕핏을 선보였다. 하만은 전방 49인치, 후방 55인치 디스플레이로 차량 내에서 1, 2열 탑승객들이 영상 촬영과 화상회의 등 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차량용 OLED 패널을 완성차 업체들에 공급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대시보드 전체에 걸친 초대형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공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차량 성능 고급화도 트렌드가 달라진다”며 “연비, 마력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배터리 효율을 높이고, ‘공간으로서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내부 인포테인먼트에도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 자동차용 OLED. /LG디스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