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난방 전문기업 귀뚜라미홀딩스가 36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배당에 나서면서, 재계에서 창업주 최진민 회장에서 두 아들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 회장과 두 아들 등 오너 일가가 귀뚜라미홀딩스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 배당이 향후 승계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 마련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오너일가 초고배당, 2세 승계 신호탄
귀뚜라미홀딩스는 지난해 연결기준 이익잉여금 등을 활용해 총 3627억원 규모의 배당을 결정했다고 지난달 10일 공시했다. 당기순이익은 298억원으로 배당성향은 약 1217%에 달한다. 이는 회사가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의 12배가 넘는 금액을 주주들에게 배당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배당 규모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귀뚜라미홀딩스가 직전 배당을 실시한 것은 2022년으로, 당시 배당금 총액은 약 168억원이었다. 3년 만에 배당 규모가 2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단순한 주주 환원을 넘어, 귀뚜라미홀딩스 지분의 절반 이상을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배당이 2세 승계 구도와 맞물린 움직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귀뚜라미홀딩스는 비상장사로 정확한 지분 구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진민 회장이 30%대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알려졌다. 이어 최 회장의 장남 최성환 귀뚜라미에너지 대표가 10%대, 차남 최영환 나노켐 대표가 8%대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의 부인 김미혜 닥터로빈 대표는 5%대, 막내딸인 최문경 닥터로빈 상무는 6%대 지분을 각각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일가 지분율을 합치면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번 고배당이 사실상 오너일가에 현금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1941년생인 최 회장은 현재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귀뚜라미홀딩스 대표를 맡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고령에 접어든 만큼, 향후 승계 구도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귀뚜라미홀딩스는 보일러 제조사 귀뚜라미를 비롯해 보일러 부품 제조사 나노켐과 귀뚜라미범양냉방·센추리·신성엔지니어링 등 냉동공조 3사, 도시가스 업체 귀뚜라미에너지, 골프장 운영사 귀뚜라미랜드, 외식 기업 닥터로빈 등을 거느리고 있다.
◇장남·차남 역할 재편 가능성…해외 사업 확대 과제도
최 회장의 장남 최성환 대표는 귀뚜라미에너지와 귀뚜라미랜드의 경영을 맡고 있다. 귀뚜라미에너지는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 양천구 일부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고, 귀뚜라미랜드는 강원도 철원 한탄강CC를 운영하고 있다. 차남 최영환 대표는 보일러 부품 제조업체 나노켐을 이끌고 있다. 나노켐은 펌프, 모터류 등 보일러 핵심 부품을 생산해 귀뚜라미 계열에 공급하고 있다.
다만 그룹 주력 사업인 보일러·냉동공조 부문은 전문경영인 체제다. 이에 따라 향후 두 아들 가운데 누가 그룹 핵심 제조 사업을 맡게 될지, 또는 역할 재편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회장 딸들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사업 영역이 구분돼 있다는 평가다.
장녀인 최수영씨는 귀뚜라미랜드 실장으로 재직하며 골프장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차녀는 미국에 거주하며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딸인 최문경 상무는 파스타와 리소토, 피자 등을 판매하는 외식 브랜드 닥터로빈에서 모친인 김미혜 대표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귀뚜라미그룹 전반의 실적 하락도 과제다. 귀뚜라미홀딩스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2101억원, 영업이익 45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2%, 영업이익은 7.6% 감소했다.
특히 귀뚜라미범양냉방, 센추리, 신성엔지니어링 등 냉동공조 3사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업계는 귀뚜라미그룹이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해외 사업 확대와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그룹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귀뚜라미그룹은 이를 2030년까지 50%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닥터로빈도 수익성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닥터로빈은 지난해 2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회사는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사업 정보공개서를 등록하며 프랜차이즈 사업 확대에 나섰다. 가맹사업 전환을 통해 실적 개선을 추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